내가 다닌 대학은 서울에서 1시간 거리에 있는 경기도의 소도시에 위치했다. 왕복 2시간의 통학을 자처하던 1학기를 지나 2학기에는 곧 기숙사 생활을 시작했다. 1시간 거리인데 무슨 기숙사냐 싶지만. 통학으로 뺏기는 체력도 만만치 않았고 또 20년간 살았던 서울을 나도 한 번쯤은 벗어나 보고 싶었다. 그래서 이르게 여름방학 단기 입관부터 시작하여 짧은 기숙사 생활을 했다.
여름방학 텅 빈 학교에서 할 일은 적당히 아침을 때우고, 도서관에 가거나 산책을 하거나 방학 때 학교에 남아 있는 몇몇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거나 였다. 특히 나는 주말이나 시간 여유가 있을 때 버스를 타고 도시 번화가로 다녀오곤 했다. 그곳에는 영화관과 패스트푸드점이 있어서 매미만 울어대는 여름방학 기숙사의 지루함을 달래주곤 했다. 혼자 또는 교우들과 시내 나들이 다녀올 때면, 서점에 들러 책을 사 오기도 하고 교내에서는 살 수 없는 생필품을 사 오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가끔 소국 한 다발을 샀다.
지금도 소국은 그리 비싸지 않다. 당시에도 소국 한 다발을 이천 원 또는 삼천 원이면 살 수 있었다. 소국에서는 향긋한 풀냄새가 난다. 우리가 꽃향기라고 생각하면 으레 떠오르는 냄새가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 소국은 그 냄새에 풀냄새를 가미한 향이다. 그래서 소국을 좋아한다.
그렇게 소국 한 다발을 사 온 날이면 바로 기숙사로 들어가지 않고 예술대학이나 대학 후문 상점가를 돌아다닌다. 해가 한풀 꺾인 여름 오후면 어디선가 하나둘 학부 사람들을 만났기 때문이다. 여름방학에 기숙사에 남아 있는 사람의 폭은 한정되어 있어서 그 사람이 그 사람이지만. 나는 그렇게 만난 사람에게 소국을 주었다. 나의 버릇, 만나는 사람에게 사소한 꽃 주기이다. 아무도 못 만나는 날은 거의 없었다. 만날 때까지 돌아다녔으니까. 그러니까, 시내에 나갔다가 소국을 사들고 돌아온 날은 누구든 만났으면 싶은 마음이었다. 정리는 잘 하지만 선택은 잘 못하기에, 누구에게 ‘보고 싶다’는 말을 잘하지 못해서 무심한 듯 소국을 한 다발 사서 만나는 아무에게 준 것이다. 숫기 없고 마음만 넘치던 어린 나였다.
그렇게 소국 한 다발을 건네면 대부분 술 한 잔을 되받았다. 시원한 맥주 한 잔과 소야볶음 정도의 안주 그리고 테이블에 놓인 소국. 나는 이야기를 잘 못하는 편이라 주로 듣기만 했다. 여름방학을 학교에서 보내는 같은 이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듣는 것으로 많은 것을 배우던 때였다. 그래서 자꾸 누구든 만나 무엇이든 듣고 싶었나 보다. 대학 초년생의 여름방학에는 향긋한 꽃과 술과 이야기가 있어서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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