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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이 지금

[가시나무] 더 이상 무섭지 않은

by 혜.리영 2020. 8. 26.

 

    가시나무는 노래 제목만이 아니었다. 낮은 덤불로 넓게 자리하는 가시나무는 짙은 청록빛으로 삐죽삐죽 솟은 가시와 같은 잎이 위협적이다. 그래서 주로, 각 아파트 단지마다 지하실 창문 앞에 가시나무가 있었다.

 

    단지가 넓은 시영아파트는 지금과 달리 지하 주차장이 없었다. 대신 아파트마다 지하실이 있었다. 그 지하실에는 주로 해당 라인의 주민들이 알음알음 쓰지 않는 짐을 두곤 했다. 낡은 자전거, 쓰지 않는 공구 등 말이다. 그래서 굳게 닫힌 지하실의 문은 늘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게다가 뒷밭으로 가면 지하실 창문 앞마다 무시무시한 가시나무가 자리하고 있어 그곳에 대한 환상은 더욱 커져만 갔다. 

 

    초등학교 저학년까지 나는 알아주는 골목대장이었다. 놀이터, 단지 상가, 아파트 화단 잔디밭 등등 어디서든 뛰어놀던 아이였다. 동네에 또래 아이들이 많았고 우리는 늘 우르르 몰려다니며 뛰어놀기 바빴다. 이런 우리를 단속하는 건 늘 우리 할머니와 윗집 아저씨였다. 두 사람은 우리에겐 제일 무서운 사람이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나처럼 노는 애가 동네에 있다면 어느 어른이라도 걱정했을 것 같다. 

 

    한 번은 아파트 옥상에 올라갔다. 당시에는 아파트 옥상문이 열려 있었고 옥상은 어떠한 안전장치 없이 뻥 뚫린 공간이었다. 발목 높이 정도의 얕은 경계만 있었으니 지금 생각하면 정말 위험한 곳이었다. 우리는 어른들 몰래 옥상에도 올라갔다. 그러나 참 귀신같이 바로 들켜서 줄줄이 연행되듯 되나오곤 했다. 그 시절 우리는 문이 닫힌 곳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다. 당시 유행하던 어린이 비디오 등도 미지의 세계를 여행하거나, 침대가 날아서 세계여행을 하는 등의 환상적인 내용이 많았다. 그러니 늘 문이 굳게 닫혀있는 옥상과 지하실은 얼마나 신비로운 공간이었을까. 

 

    그러나 우리는 겁도 많은 아이들이어서 막상 옥상에 올라가서는 무서워서 엉금엉금 기어 몇 걸음 가지도 못하고 윗집 아저씨에게 붙잡혀 줄줄이 내려왔다. 지하실에 갔을 때도 그러했다. 우리는 지난 옥상에 갔다 들킨 것을 경험하고 또 옥상과 달리 지하실에는 위험한 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는 미리 계획을 짰다.

 

    지하실에 가볼 날짜를 정하고 각자 플래시와 무기(?)를 들고 오기로 했다. 각자 들고 온 것은 그래 봐야 가위, 쇠자, 편지 뜯는 무딘 칼 등이었다. 대낮의 지하실은 플래시를 켜지 않아도 환했지만 우리는 굳이 플래시를 들고 내려갔다. 어둡고 길게 늘어진 거미줄을 예상했지만. 지하실은 의외로 환했다. 지하실 창문으로 대낮의 밝은 햇볕이 들어왔고, 어두운 지하실에서 보이는 뒷 화단은 밝고 무시무시하던 가시나무 조차도 싱그럽게 보이게 했다. 예상하듯 우리는 지하실에 들어가자마자 우리 할머니에게 들켜 모조리 쫓겨 나왔다. 

 

    옥상행도 지하실행도 단 한 번 뿐이었던 것은, 이렇게 바로 걸렸고 또 그 즉시 경비 아저씨에게 연락되어 옥상 문도 지하실 문도 굳게 잠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덕분에 우리는 더 이상 지하실 창문을 지키는 가시나무도 또 어스름 저녁 무렵 툭 켜지던 지하실 창문 불빛도 무서워하지 않게 되었다. 저지레 하며 큰다는 어린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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