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3학년 때 새 자취방을 잡고, 제일 먼저 한 일은 근처 재래시장 꽃집에 간 것이었다. 이리저리 보다가 작은 꽃이 옹기종기 모여 핀 것이 외롭지 않아 보이고 또 키우기 쉽다는 말에 순순히, 꽃잔디를 들고 왔다. 색연필로 빗대면 연보라색 정도의 보랏빛인 꽃잔디이다.
볕이 잘 드는 창가에 올려두고 오며 가며 한 번씩 들여다봤다. 평소에도 나는 창밖을 보며 멍 때리기를 좋아했다. 그러나 그 집에서는 창가에 TV를 두며 창밖을 보기 수월치 않았다. 그러나 꽃잔디 덕분에 한 번이라도 더 창가를 서성일 수 있었다.
평소 화분을 잘 키운 것도 아니면서 왜 덜컥 꽃잔디를 사 왔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새로 지내게 된 원룸이 아늑했고, 창가에 꽃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화병을 두고 자주 새 꽃을 꽂아두기에는 돈이 많이 드니, 꽃 화분을 키우자. 뭐 이런 마음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다시 한번 말하다시피, 나는 화분을 키워본 적이 없었다. 그나마 다육이 같은 작은 식물을 선물 받아도 금방 말라죽이기 일수였다. 그러면서도 화분을 두고 꽃이 있었으면 싶었던 것은,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집의 기본이었기 때문이다.
누구나 집에 대한 로망이 있다. 나에게 그것은 커튼과 화병의 꽃이다. 작고 좁은 원룸일지라도 블라인드보다는 커튼이 좋았고, 잘 챙기지도 못하면서 화병에 꽃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야 아늑한 집답다고 생각한 것이다.
내 유년의 집을 생각하면 비슷한 모양새였던 것 같다. 거실에는 베란다 창문에 늘 길게 커튼이 있었고. 할머니는 봄이면 개나리 가지를 꺾어와 화병에 꽂아 두었다. 커튼과 화병이 있는 집은 안정감을 주는 집이다. 내 유년의 우리 집이 그러했듯.
이후는 모두 예상하는 대로이다. 꽃잔디는 아마 채 한 달을 넘기지 못하고 시름시름 말라갔고, 화분마저 깨끗이 치워지는 것은 두 달을 넘어가지 않았다. 그리고 내 흥미는 금세 화분에서 멀어져 작은 어항에 물고기를 두는 것으로 옮겨갔다. 어항. 앞서 말한, 커튼과 화병 그리고 어항은 내 유년의 집을 채우던 것이다. 원룸에 조명과 여과기가 달린 커다란 어항을 둘 순 없으니, 적당한 유리병에 모래와 수초를 심어 작은 열대어 몇 마리를 키웠다.
그나마 열대어는 꽃잔디보다는 오래 키웠다. 다른 종류의 열대어로 확장하기까지 했고 나중에는 서울 집 내 방 책상 위에 여과기도 갖춰진 미니 어항을 두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화분에 비해 물고기를 키우는 취미는 괘 오래갔다. 그러나 그것은 다마고치 게임을 하듯 육성 게임을 하는 기분일 뿐이다.
개강을 앞두고 짐 정리를 끝난 원룸에 혼자 앉아 방에 불도 켜지 않고, 창가의 꽃잔디를 본다는 핑계로 창가에 의자를 바짝 두고 앉아 하염없이 창밖만 보았다. 개강하지 않은 원룸가는 사람도 없고 불빛도 없는데. 이십 대 초반을 막 지나고 있던 나는 뭘 그리 보고 있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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