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꼬따오에 있던 11월은 우기였다. 비가 하루 종일 오거나 추운 건 아니었다. 우기이고 11월이라고 해도 28도를 웃도는 기온은 따뜻했고 서울보다 훨씬 나았다. 그러나 바닷속은 조금 달랐다. 나중에 장마인 제주에서 펀 다이빙을 하며, 우기임에도 그 정도였던 따오의 바다가 얼마나 잔잔하고 아름다웠는지 새삼 깨달았지만. 바다 수업을 받던 그때는 그런 것을 알리 만무했다.
우기인 바다는 조류가 있었고 바닷속이 조금 탁했다. 그러나 오픈워터 수업을 들으며 그런 것이 내 눈에 들어올 리 없었다. 나는 바닷속에서 호흡을 잡고 조류에 자꾸 밀리는 이 몸뚱어리를 제대로 건사하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맘대로 움직이지 않는 몸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바닷속에 있어서 자유롭고 편할 줄 알았는데(수업으로 보아온 영상 속 다이버들이 그러했으니까!), 현실은 달랐다. 나는 내 몸을 제대로 가누질 못해서 이리 흔들리고 저리 흔들렸다. 오리발을 찬 발을 얼마나 굴러야 하는지, 다리를 얼마나 차야 몸이 움직이는지 감이 없어서 막무가내였던 것 같다.
게다가 내내 바닷속에 있다는 생각이 나를 겁나게 했던 것 같다.
뒤처지지 말고 잘 해내야 해,
해내야 해,
뒤처지지 말아야 해.
나는 그 생각 밖에는 없었던 것이다. 뒤처지면 민폐니까, 뒤처지지만 말자. 이제 막 꼬따오에 도착한 나는 너무나 서울스러운 생각에 물들어 있었던 것이다. 뒤처지면 좀 어때서, 물속에서 호흡 잘 하고 있고 조류에 흔들려도 굴러가지 않고 있으니 괜찮지. 그러나 그때는 서울내기의 내가 많아서 뭘 해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자꾸 해내야 한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그러니 몸이 따라주지 않아 힘든 오픈워터가 더 힘들 수밖에. 오픈워터 바다 수업은 '힘들다' 외에는 할 말이 없었다. 육지로 오면 육지 멀미에 시달리느라 오후 내내 침대에 누워있기만 했다. 게다가 숙소 이동에 조금 문제가 생겨서 우리는 한 번 이동하면 될 숙소 이동을 두 번이나 거치느라 지치기도 많이 지쳤다. 우기여서 밤이면 폭우와 천둥 번개가 몰아쳤고, 나는 매일 밤이면 내일 아침에는 감기에 들어 몸이 무거웠으면 좋겠다 바라며 잠들었다.
그러나 아침이 되면 천근만근이던 몸이 왜 이렇게 잘 일으켜지던지. 반짝 떠진 눈에 기계처럼 일어나 바다로 나갈 준비를 했다. 주어진 것을 해내야 해, 맡은 것을 해내야 해. 그때까지 나에게는 '해내야 한다'는 생각이 많이 컸다.
그리고 그 덕분에 오픈워터 자격증을 땄다. '해내야 한다'는 강박적인 생각이 나를 힘들게 하고, 아프게 하지만. 이때만큼은 그 덕분에 오픈워터를 무사히 따냈다. 몇 번이고 포기하고 그만두려던 마음을 잡아주던 해내고자 하는 생각이 고마웠다. 해내려고 애쓰던 생각과 힘도 나였다. 그것도 나를 구성하는 일부이고, 그 덕분에 내가 해낸 것들이 내 삶을 이루고 있다.
해낸다는 마음도, 꽤 괜찮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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