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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이 지금

[사루비아] 텃밭을 일구고 뛰어놀던

by 혜.리영 2020. 8. 31.

 

    소꿉놀이, 어린 시절 제일 많이 했던 놀이다. 엄마 아빠, 가족의 개념으로 놀기보다는. 화단을 꽃 풀을 빻아 판판한 돌멩이에 얹어두고 서로 대접하기 바빴던 놀이였다. 비슷비슷해 보이는 것들에도 우리는 나름대로, 이건 국수야, 이건 수프야. 이름을 붙여 대접했다. 그러나 뭔가 서로 엇갈리면, ‘야아~ 그건 이거야아~ 내가 이렇게 한 거란 말이야아~’ 하며 친구의 손길을 가로막곤 했다.

 

    그렇게 놀다가 배고프지도 않으면서 우리는 사루비아 꽁지를 쪽쪽 빨았다. 사실은 혀 끝에 닿는 달콤함,으로 끝나는 맛이다. 작은 사루비아 꽃은 어린 내 혀에 닿으면 바로 닳아 없어지는 작은 달콤함을 가졌다. 빨간 꽃은 두 겹으로 되어 있고, 그중 속꽃으로 보이는 기다란 꽃을 잘 뽑아내면 그 끝은 달콤한 꿀(이라고 생각한 것)이 있었다. 시영 아파트 화단에는 분꽃이 많았고 사루비아는 드물었다. 그래서 사루비아 꽃이 피면 동네 아이들 너나 할 것 없이 따기 바빴다.

 

    단물이 쭉쭉 나오는 것도 아닌데 우리는 맛이 난다는 것이 좋았다. 디즈니 만화동산에서 보던, 꽃에 꿀이 있고 벌이 날아들고 단맛이 난다는 것을 현실에서는 사루비아가 확인해주었던 것이다. 동네에 피던 분꽃이나 장미는 색만 예쁘고, 향기만 좋았지 맛은 없었다. 엄마가 먹으라던 진달래는 얇은 꽃잎이 혀에 닿자 녹듯 사라졌지만 특유의 씁쓸한 풀 맛만 났다. 그러나 사루비아는 달았다. 단맛은 순간이었지만.

 

    배가 고프다고 사루비아 꽃을 따진 않았다. 나를 포함한 동네 아이들은 그냥 사루비아 꽃을 보면 땄다. 사루비아 꽃의 단맛이 좋지도 않았는데, 우리는 꽃을 보면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처럼 꽃을 땄다. 악동 같은 어린 시절이었다. 그래서 동네 어른들에게 혼나기도 많이 혼났다. 사루비아 뿐 아니라 꽈리도 있었다.

 

    우리가 덜 익은 앵두와 사루비아 꽁지만 쪽쪽 빨아먹자, 동네 어른이 꽈리를 따주었다. 아파트 뒷 화단에 텃밭을 일구던 어른들이 꽈리를 드문드문 심어둔 것이다. 삼각뿔 모양의 주황색 주머니를 뜯으면 그 안에 열매가 있다. 그것을 먹었던 기억은 나는데. 맛은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맛이 없었나 보다. 꽈리는 먹지는 않고 주머니 같은 겉껍질을 뜯는 재미에 빠져 보이는 족족 뜯어댔다. 그래서 역시나 어른들에게 혼나기만 했다.

 

    꽃잎과 잎사귀를 빻아 식탁을 차리던 소꿉놀이를 하던 그 시절에는 배고프지 않아도 덜 익은 앵두를 땄고, 사루비아 꽃을 땄다. 재밌다고 꽈리를 뜯어댔고, 박하향이 나는 잎사귀를 파르르 흔들어댔다. 서로 무엇을 만드는지도 모르고 잎을 빻고 꽃을 얹고, 나뭇가지를 주어와 젓가락으로 내밀던, 서로 대접하기 바쁜 소꿉놀이의 날들이었다. 어른들이 텃밭을 일구고 아이들이 저지레를 하며 뛰어놀던, 나의 어린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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