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피는 벚꽃은 이리 펴도 예쁘고, 저리 펴도 예쁘다. 회사 근처에 공원이 있고 공원 안에는 키가 큰, 울창한 벚나무가 심겨 있다. 봄이 오고 키가 큰 벚나무에 꽃이 피면, 저 멀리 하늘에 꽃이 핀 듯 하늘거린다. 윤중로나 유명하다는 벚꽃 거리의 가로수 같은 크기의 벚나무가 아니라 정말 큰 벚나무이다. 애석하게도 공원 담장 안에 있어서, 짧은 점심 산책으로는 담장 밖에서 한껏 얼굴을 쳐들고 하늘 가까운 벚꽃을 쳐다볼 뿐이다.
봄에 피는 꽃은 다 예쁘다. 특히 이른 봄의 꽃들은 주로 흰꽃이 많다. 목련도 그렇고, 벚꽃도 흰 빛에 가깝고. 그런 꽃들은 밤에 봐야 예쁘다. 봄꽃은 밤에 봐야 제대로지!
봄꽃을 밤에 봐야 예쁘다는 것을 알려준 꽃은 목련이었다. 꽃은 다 예쁘다지만 나는 목련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물론, 나뭇가지에 뽀송뽀송한 아기 솜털 같은 꽃몽오리를 올리면 봄이 오는구나 반갑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목련을 좋아하진 않았다. 맨 가지에 커다란 꽃잎이 마치 잎사귀 마냥 달려있는 모양새가 누가 휴지 몇 장 붙여놓은 것 같아 보였다. 게다가 결정적인 장면은 꽃잎이 질 때였다. 커다랗고 두툼한 목련 꽃잎이 하나둘 땅에 떨어지면, 아이고야. 금방 짓무르고 갈변한다. 나무 아래로 하얗게 떨어진 꽃잎이 짓물러 있는 그 모습이 좋지 않았다. 우연히라도 손에 닿으면 그 진뜩한 느낌이 싫었던 것이다. 지금 목련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를 적으면서도 내 미간은 찌푸려졌다. 생각만 해도 좋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목련을 꽃으로 잘 취급하지 않았다. 나만의 꽃사전이 있었다면 목련은 쓰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누가 봄의 흰 꽃은 밤에 봐야 예쁘다는 말을 해줬고. 그때 가장 가까운 시기에, 가까운 곳에 목련이 피어 있었다. 해가 진 이른 봄, 밤과 목련. 그때 처음으로 목련이 예쁘다는 생각을 했다. 예쁘구나 목련.
그때부터 봄이 오면 설렜다. 아니 봄밤이 설렜다. 봄밤에 봄꽃을 볼 생각에 설렜다. 직장생활을 하면서는 그 설렘이 위로가 되어 힘이 됐다. 지금은 이사 갔지만, 당시 퇴근길 전철에서 내리면 몇 걸음 가지 않아 어느 아파트 담장 밖으로 큰 벚나무가 뻗어 나와 있었다. 그 나무는 키도 크고 울창했다. 내 키만 한 담장 위로 울창한 꽃가지를 뻗어 내놨으니 말이다. 그리고 한껏, 정말 있는 힘껏 뽐내듯 봄이면 그 가지에 왕창 꽃을 피워댔다. 기운이 다 빠지는 퇴근길 때로는 땅만 보며 때로는 귀소본능으로만 걷다가도 그 벚나무 아래서는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고개를 들면 밤하늘은 보이지 않게 빽뺵한 벚꽃이 흐드러졌다. 그 순간이 좋았다. 하루 종일 빠졌던 기운이 그 잠깐의 찰나에 충전되는 기분이었다.
한 번 그렇게 충전을 받고 나니, 그 벚나무 아래는 나의 충전길이 되었다. 봄은 짧고 꽃이 피는 시간은 더 짧다. 하루만 놓쳐도 꽃은 흐드러지게 졌다. 만개를 놓치면 마음이 아까워 혼났다. 매일 같은 자리에서 보다 보니 만개의 시점도 알게 된 것이었다. 만개한 벚꽃을 향해 고개를 한껏 치켜들면 딱 맞는 콘센트에 꽂힌 충전기처럼 마음의 기운이 차올랐다.
매일 같은 벚나무이고, 매해 같은 벚꽃이지만. 나는 매번 다른 마음으로 충전을 받고, 매번 다른 감탄으로 사진을 찍었다. 밤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꽃만 가득한 꽃하늘. 흰꽃은 밤에 봐야 예쁘고, 봄꽃은 봄밤에 봐야 마음에 가득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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