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에 걸어서 대략 8분 거리에 시장이 있고, 또 걸어서 대략 5분 거리에 큰 마트가 있다. 주로 마트에 가고 가끔 시장표 음식이 생각나면 시장으로 간다. 그러나 요즘은 마트에만 간다. 시장에 가면 꼭 사먹던 닭강정이 있는데 순대곱창도 함께 하는 집이다. 몇 달 전 그곳에서 순대 곱창을 포장해와 먹었는데. 그만 돌을 씹고 말았다. 악! 소리가 날 만큼 도톨한 돌이어서 자연스레 발길이 뜸해진 것이다.
마트에 가면 나만의 쇼핑 순서가 있다. 입구 좌측부터 시작해서 마트를 한바퀴 돈다. 사야할 품목이 정확해도 그냥 그 순서로 마트를 구경한다. 내가 좋아하는 낫토는 할인을 하나 안 하나 훑어보고. 즐겨 먹는 치즈는 2+1을 하나 안 하나 살펴보고. 매번 살까말까 망설이는 냉동식품 앞에서는 여전히 망설이다가. 그렇게 마트를 한 바퀴 돌면서 꼭 사야할 것들을 장바구니 담아 계산을 한다. 나만의 마트 루틴이다.
최근에 루틴이 하나 더 생겼었다. 과거형으로 말하는 것은 그 루틴은 이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시장 닭강정과 함께 좋아하던 것이 마트 닭강정이었다. 시장 닭강정은 매콤한 맛이 좋았고, 마트 닭강정은 달짝한 소스가 좋았다. 그래서 그날그날 내 마음 컨디션이 따라 시장과 마트 닭강정을 사먹었다. (매일 먹었다는 말은 아니다. 닭강정이 생각나는 그날그날에 따라. 그러나 실은 매일이라고 해도 무방한 매주 한두 번씩은 먹었다. 오천원 내외의 가격은 유독 업무가 힘든 날 든든한 저녁으로 뱃속도 지갑도 든든하게 해주었다.) 시장 닭강정을 잃고 난 후 나는 마트 닭강정만 사 먹었다. 매콤한 시장 소스가 아쉬웠지만. 대신 마트 닭강정은 퇴근 후 터덜터덜 마트에 가면 할인가격으로 나를 반겨주었다.
그렇게 나의 소확행, 소울푸드가 되어주었던 마트 닭강정이 단종되었다. 어느날 부턴가 그 자리에 고추닭강정, 마늘닭강정이 들어오더니 더 이상 양념 닭강정은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기다려도 기다려도, 같은 소스의 양념통닭이 새로 출시되었을 뿐. 양념닭강정은 다시 나오지 않았다. 다른 것은 내 입애 맛지 않아 한두 번 먹다 그 후론 거들떠 보지 않았다. 닭강정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 동네 가성비 닭강정을 둘다 잃었다.
어제도 마트에 갔다. 어제 사야할 것은, 낫토와 두부였다. 사는 김에 세일하는 어묵도 하나 사고 나는 또 즉석식품 코너 앞을 서성였다. 양념 닭강정은 없었고, 꼬르륵 배는 고프고. 그 맛이 아닐 걸 알면서도 할인가가 붙은 양념통닭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반마리 정도 될 양이었다. 집에와 일요일 저녁 예능을 보며 양념 통닭을 꺼냈다. 역시 같은 양념이 분명하지만 그 맛은 아니었다. 거봐, 그 맛은 양념닭강정만 가능해. 그 맛이 아닐 걸 알았으면서도 괜히 투덜거려 본다.
일요일 저녁 예능은 왁자지껄하고, 나는 그 맛이 아니라며 투덜거리면서도 반마리 양념치킨을 저녁 삼아 하루를 마무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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