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에 기대고 싶은 날이 있다.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났으면 하는 날. 로또 같은 복권도 좋고, 길에서 우연히 반가운 사람을 만나도 좋고, 차에 치어도 좋고. 그러니까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아무 상관 없는 듯 우연이 일어났으면 싶은 날 말이다. 그런 날은 일단 걷는다. 퇴근 길 지하철 역까지 가는 제일 먼 길을 골라 빙 돌아 걸어간다. 걸으며 생각한다. 지금 벌어질 만한 우연을. 나뭇가지가 뚝 부러져 떨어질 지도 몰라.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연예인을 만날 지도 몰라. 가끔 생각나는 사람을 이 길에서 만날 지도 몰라.
그렇게 걷다가 건너편, 멈춰선 자전거에 눈길이 멈춘다. 자전거 앞에는 꾀죄죄한 고양이 하나가 웅크리고 있다. 자전거 탄 사람은 고양이를 휘이 쫓지도 못하고 잠시 기다린다. 고양이가 슬쩍 엉덩이를 전봇대 쪽으로 옮기고 나서야 자전거는 지나간다. 그리고 나는 고양이와 눈이 마주친다. 저 고양이가 나에게 달려오는 우연이 생기려나. 고양이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계속 본다. 보면서 걸어간다. 길은 한적해서 어디에 부딪힐 일이 없다. 고양이와 평행한 위치도 지나 점점 멀어지는데도. 고양이는 여전히 웅크리고 있다. 혹시나 내가 고개를 돌려 완전히 지나치면 따라오려나 싶어, 고양이를 보지 않고 몇 걸음 더 걸었지만. 뒤돌아보니 고양이는 여전히 그 자리이다. 고양이가 따라온다던가 하는 우연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길을 마저 걸었고, 빙빙 돌아가는 먼 길을 걸어 자하철 역으로 갔다. 역 근처 가판대에서 로또를 사서 당첨될 우연을, 떨어질 우연을 꼬깃꼬깃 지갑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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