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사람이 있다. 속상하거나 힘든 일이 있으면 사람 붙잡고 시시콜콜 얘기를 하며 속을 풀어내는 사람. 또 그런 사람이 있다. 속상하거나 힘든 일이 있으면 사람들에게서 떨어져 외딴 곳에서 속을 풀어내는 사람. 나는 주로 후자인 편이다. 잠시 나의 일상에서 벗어나 조용히 새소리, 파도 소리 들으며 그 소리 속에 속을 풀어놓고 오는 사람. 나도 한 때는 시시콜콜 속풀이 얘기를 나누기도 했으나. 나 자신에게 이기적인 나는, 충분한 위로를 받지 못함을 종종 느꼈고. 또 얘기를 하느라 다시 그 힘든 상황을 떠올려야 하는 게 영 고역이었다. 그건 지금도 크고 작건 같은데.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이 생기면 나는 싹뚝 잘라 버리는 편이다. 스트레스 받는 힘든 상황을 누군가에게 얘기하느라 다시 떠올리면. 나의 정신이 그때와 똑같은 강도의 스트레스를 또 받는 걸 느낀 후로는, 되도록 잘라 버리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이렇게 서두가 길었던 것은, 최근에 그로도 풀리지 않은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농담처럼, 나이 들어서 그런가봐, 나이 들면 스트레스 관리법도 바
뀌나봐 하며 짐짓 넘어가고 싶었지만. 잘 넘어가지지 않았다. 풀리지 않는 마음은 자꾸 눈덩이처럼 커져 잿빛 먼지뭉치처럼 가득 들어찼다.
그래서 그 잿빛 마음이 아니라 마음을 풀지 못하는, 답이 없는 상태가 나를 더 짓눌렀다. 전에는 이렇게 하면 풀렸는데, 이 정도면 지나갔는데, 기운 차릴 수 있었는데. 이제는 왜 되지 않을까.
성삼일을 맞아 주님 만찬 미사를 드리려 마음을 먹고, 조금 멀리 사는 친구에게 같이 가자고 연락을 했다. 저녁 8시에 하는 미사이고 친구 집은 조금 먼 편이어서 괜한 수고를 주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혼자 미사 드리고 싶지 않았다. 지금 이런 상태의 나여도 괜찮을 친구라고 마음이 불렀다. 미사 전 우리는 잠깐의 커피 타임을 가질 수 있었다.
이런저런 얘기가 오고갔고. 사실 괜찮은 척 해야지 싶었다. 예전처럼 괜찮은 척, 별일 없는 척하면 적당히 마음이 속아 그렇게 지나가기도 했으니까. 그러나 모든 게 전과 같지 않았다. 답이 없어서 너무 막막해, 내가 나에게 인색했어. 눈물은 참는 게 아니라 흘리는 거다. 여전히 알 수 없고 텁텁한 먼지덩이 같은 마음은 그대로이지만. 그래도 괜찮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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