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신던 운동화가 밑창이 다 갈라진 줄도 모르고 있었다. 이제 새 운동화를 살 때인 것이다. 사실 이미 며칠 전 아니 몇 주 전부터 틈틈이 운동화를 보러 다녔다. 그러나 이렇다 하게 살 만한 게 눈에 띄지 않았다. 다양한 후보군을 두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결과, 드디에 특정 브랜드의 운동화 하나를 눈여겨 봐뒀다. 그리고 그 운동화를 사겠다고 결심하고 시내에 나간 것이다.
신발가게에 들어가서 바로 찜해둔 운동화를 보지 않고 다른 브랜드의 운동화들 부터 다시 한 번 훑어본다. 이미 보고 또 본 것들이지만, 그래도 최종 단계 후보까지 올라왔던 운동화를 다시 한 번 신어보고. 이건 이래서 탈락이었지, 이건 이런 부분이 아쉽지 생각했다. 그리고서야 다시 마음 속에 찜해둔 브랜드의 운동화를 신어보았다.
어라, 며칠 전 다른 곳에서 신어봤던 그 느낌이 아니다. 무언가 탐탁치 않음을 느끼고, 다음 후보였던 다른 브랜드의 운동화를 신어보았다. 이것도 아니야. 구매를 하기로 마음을 먹고 와서도 이렇게 고개만 젓다가 그대로 가게를 나왔다.
기존에 신던 운동화는 검정색이었다. 이번에 새로 사기로 마음 먹은 운동화는 흰색, 밝은 색 운동화를 사고 싶었다. 그런데 자꾸 망설이게 된 것은, 내가 흰 운동화를 잘 신고 다닐 수 있을까 였다. 어린 시절 엄마에게 제일 많이 들은 여러 말 중 하나가 흰 건 때 타서 안돼, 였다. 식구가 많다보니 빨래 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흰옷은 사절이었다. 세탁하는데 좀더 손이 가는 흰옷은 우리 집 금지 옷이었다. 아니 우리 자매의 금지 옷이었다. 그 어린 시절에서 강산이 몇 번이나 바뀌었는데도 아직 내 머리 속에는 흰 건 관리하기 힘들지, 라는 관념이 박혀버린 것이었다.
흰 운동화를 사서 잘 관리하면 되는 건데, 나는 관리하기 힘드니까 흰 건 사지 말자고 하고 있는 것이다. 어릴 적 들었던 ~하면 안돼 라는 부정적 명제가 오래 작동하는 것이다. 결국 운동화 사기를 포기하고 지인을 만났다. 그리고 평소 어떤 운동화를 신는지 물어봤다. 흰운동화만 신는다는 지인. 흰 운동화 사면 겨울에는 좀 안 어울리지 않아, 때 잘 타지 않아, 관리하기 까다롭지, 나는 질문을 쏟아냈다. 지인은 하나하나 긍정적으로 답해주었다. 겨울에도 흰 운동화 괜찮아요, 천 소재는 때가 쉽게 탈 수 있지만 가죽은 관리 괜찮아요 등등. 그제서야 십만원도 넘지 않던 그 운동화 그냥 살 걸 싶었다.
물건을 섣불리 사지 않는 편이긴 하다. 구입에 앞서 늘 재고하는 편이지만, 재고는 한두 번이면 족하다. 나는 좀더 많은 횟수의 재고 끝에 구입 결정을 하고서도 또 재고를 하니. 이러지 말자. 앞으로 구입에 앞선 재고는 삼세판, 세 번으로 정하자.
이번 주에 운동화를 사러 다시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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