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뉴월은 어디든 나가야 하는 달. 인왕산 자락길을 걸었다. 잎들은 점점 짙어지고 건강한 광택을 뽐냈다. 야생으로 핀(화단 관리로 심었겠지만, 꽃집이 아닌 땅에서 피어난) 작약을 보고, 이름 긴 데이지를 보고, 수선화일까 가늠해보는 꽃도 보고. 오뉴월은 짙어가는 잎과 피어나는 꽃으로 가득하다. 인왕산 자락길 중간에는 수성동 계곡도 있고 초소책방도 있다. 적당한 코스의 시원함과 쉼이 있어 걷기 더 좋았다.
출발하기 전 지지배배 종알거리며 걷기 어플을 깔았다. 두 지인은 먼저 사용하던 것이고 나는 이번에 새로 깔았다. 새로 시작하는 것은 늘 서로 길들이는 시간과 과정이 필요하다. 어플을 백그라운드에 켜두고 자락길을 걸었다. 중간중간 쉬는 구간도 잘 읽어내는 어플이었다. 첫 구간 걸음은 위치를 잘 잡지 못해, 어플 여기저기를 살펴보았으나 원인을 찾기 어려웠다. 다시 똑같이 켜두고 걸었다. 두 번째 구간부터는 위치를 잘 읽어냈다. 어플이 내 휴대전화와 맞춰가는 시간이 필요했나보다.
자락길을 내려와 윤동주 문학관에 갔다. 우리는 윤동주 보다는 영화 '동주'의 김하늘에 대해 더 많이 얘기했다. 특히 그 나레이션은, 윤동주의 시를 생각하면 이제 김하늘의 목소리가 가장 먼저 떠오를 정도였다. 그리고 다시 걷다 코와 눈을 자극하는 스콘 가게에 들어가 밥보다 스콘 먼저, 하나씩 사들고 나왔다. 그러고 나서야 밥집을 찾아가는 빵순이들. 아니 정확히는, 빵냄새에 제대로 낚인 물고기들. 배가 고픈 것을 떠나 열어든 문을 통해 솔솔 풍겨오는 갓 구운 빵, 스콘 냄새는 누구도 그냥 지나칠 수 없을 것이다.
밥을 먹고 나서 다시 또 걸었다. 부암동에서 경복궁까지 걸어 내려오는 길. 한 지인은 달리고 싶다고 설레었고, 한 지인은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웠다. 구름이 적당해서 많이 눈부시지 않은 적당한 날이다. 바람마저도 적당해서 춥지도 않고, 걷느라 흘린 땀을 금세 날려줄 정도만 불어왔다. 짙어가는 잎과 피어나는 꽃을 보며 걷는 우리는 걸음마다 이야기꽃을 피워댔다. 서로의 일상과 안부 또 지난 삶에 대한 소소한 대화들. 그냥 이렇게 소소한 지금을 알아가는 것이 좋았다. 함께 걸으면 이렇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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