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매일이 지금

흰눈썹(077)

by 혜.리영 2021. 6. 7.


나는 비교적 흰머리가 없는 편이다. 이제 흰머리가 나도 무방한 나이인데도 없는 편이니 축복이라 할 수 있겠다. 스트레스로 흰머리가 올라오는 편도 아니라서, 흰머리에 대한 걱정이나 생각을 평소에도 별로 하지 않는 편이다. 그런데 의외의 것이 나를 깜짝 놀라게 했다. 바로 흰눈썹이다.

어느 날 세수를 하고 수건으로 얼굴을 닦고 거울을 보는데, 눈썹에 뭔가 흰게 빛났다. 물방울이 맺혔나 싶어 수건으로 몇 번 얼굴을 더 훔쳤다. 그러나 그것은 물방울이 아닌 흰눈썹이었다. 덜컹 심장이 내려앉는 듯 깜짝 놀랐다. 흰눈썹이라니......!! 흰머리가 나지 않는다고 좋아했더니 흰눈썹이 솟아날 줄이야. 다시 거울을 몇 번이나 들여다보며, 물이나 반사된 것이 아닌 내 눈썹으로 올라온 흰색 눈썹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섣불리 눈썹이 이렇게 모두 하얗게 새버리면 어떡하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눈썹 염색을 알아봐야 하나 생각하며, 집게로 톡 흰눈썹을 뽑았다.

그 후로 흰눈썹은 더 나지 않았다. 그래서 약간의 안도를 하며 다시 일상을 지내는데. 흰눈썹은 늘 예상치 못할 때 까꿍 하며 나타났다. 어제까지 보던 눈썹에는 흰색이 없었는데, 자고 일어난 사이에 흰눈썹이 생기는 것이다. 나는 흰머리 대신 흰눈썹이 먼저 나는 타입인가보다 생각하며, 마찬가지로 집게로 톡 뽑았다.

어느 날 친구와 만나 흰눈썹에 대한 놀라운 하소연을 하니, 친구는 스트레스로 그런 것 아니냐 물었다. 그리고 다른 자리도 나는지, 같은 자리만 나는지 물어봤다. 그렇게 생각해보니, 늘 같은 자리에만 났다. 그리고 유독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날 쯔음에 흰눈썹을 만났던 것 같았다. 그렇게 나름 흰눈썹의 원인을 찾고나니 조금 안심이 되었다. 그래, 아직 눈썹이 샐 나이는 아니지. 나의 흰눈썹은 스트레스가 원인이라고 정리했다. 스트레스로 흰머리가 솟아나듯, 나는 흰눈썹이 솟아나는구나. 새치염색을 해도 무방할 나이에 아직 간간히 나는 흰머리를 발견하는 축복을 받았으니. 스트레스로 인한 흰눈썹 정도는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래서 요즘은 대화가 이렇게 바뀌었다. '넌 흰머리 안 나?'라는 질문을 받으면, 전에는 '응 안 나는 편이라 별로 없어 다행이지'라고 대답했는데 요즘은 '흰머리는 별로 없는데 대신 스트레스로 흰눈썹이 나'라고 말을 하는 것이다. 흰머리에 대한 공감대를 만들 수 없어서 때로는 아쉽고, 때로는 미안하고 사실 대부분은 다행이라 생각했는데. 이제는 누군가 나에게 흰머리 고충을 얘기하면 나는 흰눈썹의 고충을 얘기할 수 있는 것이다.

각자 자기만의 나이듦이 있는 것이고, 자기만의 스트레스 지표가 있는 것이다.









728x90

'매일이 지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설레발(079)  (0) 2021.06.08
그냥 하루(078)  (0) 2021.06.07
나도 처음이라서(076)  (0) 2021.06.06
나의 글밭(075)  (0) 2021.06.04
한 일 일기(074)  (0) 2021.06.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