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전 스탠드를 끄기 전에 괜히 엄지만 놀리며 스마트폰을 보다가 이런 글을 읽었다. 번아웃 증후군에 대하여. 어떤 의사가 쓴 글이었는데 자세한 내용은 기억하기 어렵지만, 번아웃 증후군이 생기는 원인 3가지는 또렷하다. 하나, 외로울 때. 자신의 얘기를 어디에도 할 수 없는 외로움을 느낄 때라고 한다. 하나, 소중한 것을 잃었을 때. 단지 물건을 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삶의 가치 혹은 그만한 무언가를 잃었을 때이다. 하나, 지쳤을 때. 말 그대로 지쳤을 때이다. 끌어내고 싶어도 끌어낼 수 없는 소진상태이다.
외로움, 소중한 것을 잃음, 지침. 이 세 가지가 번아웃의 원인이라고 했다. 한 밤 중 스탠드 불만 밝힌 어둑한 방에서 번아웃에 대한 글을 읽다가 주르륵 눈물이 흘렀다. 수면 위 성난 폭풍과 파도는 잦아들었지만 수면 아래 심해 깊은 곳의 어두움은 가시지 않은 것 같았다. 아직 풀지 못한 숙제가 마음 속에 있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찾기 위해 나는 무언가를 계속 시작했다.
계속 시작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이 다행이다. 그것이 계속 나를 건져냈다. 나는 호기심이 많고, 한 번 생각이 든 것은 두 번은 하지 않더라도 꼭 한 번은 해봐야 한다. 그래서 늘 '한 번만 해보자'하며 시작하는 것이다. 두 번은 없는 시작, 그래서 계속 시작할 수 있었다. 그렇게 무언가 시작하다보면 성취도 느끼고 또 되지 않는 멈춤도 느낀다. 좌절이란 말은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좌절을 느낄 만큼 열성을 다하지는 않았으니까 말이다. 적당히 해보다 안 되겠다 싶으면 그만두는 것이다. 나는 언제든, 한 번 만 해보자, 하며 시작할 수 있으니까 그만두는 것도 어렵지 않았던 것이다.
시작하고 그만두는 과정 속에서 이미 알고 있던 나를 알게 되고, 모르던 나를 알게 되고, 만나고 싶지 않던 나도 만나게 된다. 그렇게 늘 나와의 만남을 시작하는 것이다. 요즘 내가 만나는 나는 번아웃이다. 번아웃을 어떻게든 풀어보려 노력하는 중이다. 마흔 사춘기라 불릴 수도 있고, 번아웃이라 불릴 수도 있고. 또 뭐라뭐라 요즘 이름을 붙이는 여러 감정들을 지나가는 중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계속 지나가는 중이다. 내가 계속 시작하듯이, 나는 계속 나를 지나가는 중이다. 멈추지만 않으면 된다는 마음으로, 지나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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