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실의 부담, 시간을 내지 못하는 마음
회사에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나는 종종 내 마음이 어디쯤에 있는지 잊는다. 몸은 의자에 묶여 움직이지 않는데, 마음은 가만히 두면 금방 먼 곳으로 걸어가 버린다. 결국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을 다시 불러와 자리시키는 사람처럼 산다.
“저기… 잠시만, 아직 퇴근이 아니야.”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면, 마음은 얌전히 돌아오다가도 다시 슬금슬금 창밖으로 나간다.
나는 지금 여행 중이 아니다.
여권은 책장 한 켠 어둠 속에서 얌전히 잠들어 있고, 비행기 표도, 지도도, 새로운 도시의 냄새도 없다. 그런데도, 나는 여행을 쓰는 사람이다. 여행을 떠나지도 못하면서, 여행을 쓴다니. 이 모순이 가끔은 조금 웃기고, 가끔은 조금 아프다.
회사에서 보내는 대부분의 하루는 일정과 숫자들 사이에 끼어 만져진다. 메일을 확인하고, 업무를 정리하고, 회의에서 의견을 조율하고… 그렇게 ‘실용적인 말’이 쌓일수록, 나에게는 ‘사적인 말’이 말라간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 해서, 나에게 필요한 나는 늘 뒤로 미뤄진다.
그래서 어떤 날은 스스로에게 서운해진다. 왜 나는 나를 이렇게 자주 밀어두는 걸까. 가방 속에 항상 챙겨 다니는 노트가 있는데도, 며칠이고 빈 페이지만 넘기고 또 넘긴다. 바쁘다는 이유는 언제나 너무 그럴듯해서, 나는 그 핑계에 가장 먼저 설득되는 사람이다.
점심시간에도 회의가 이어지는 날이면, 문득 탄식처럼 이런 생각이 스핀 듯 지나간다.
‘나는 언제쯤 다시 떠날 수 있을까.’
떠난다는 건 사실 여행지로 가는 일이 아니라, 어느 순간의 나를 다시 만나는 일인데, 그걸 알면서도, 현실 앞에서는 자꾸 작아진다.
퇴근길, 지하철 손잡이를 잡고 비틀거리며 가다 보면
내가 정말로 원하는 건 무엇인지 불쑥 떠오를 때가 있다. 내가 이 도시를 벗어나고 싶은 건지, 아니면 그냥 오늘의 나를 벗어나고 싶은 건지.
회사 사람들은 내가 여행을 자주 다니는 줄 안다.
“또 어디 갔다 왔어요?”
내게 묻는 말 가운데 가장 많은 말이 그것이다. 하지만 나는 웃기만 한다. 사실은 여행보다 일이 더 많고, 떠난 날보다 못 떠난 날이 훨씬 많다고 말하지 않는다. 말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믿는다. 대신 나는 내 안에서만 조용히 훌쩍인다. 나는 떠나고 싶은 사람이고, 떠나지 못하는 사람이고, 그 둘 사이에 서서 균형을 잡아야 하는 사람이다.
어쩌면 지금의 나는, ‘떠나지 못하는 사람’으로 살고 있어야 비로소 글 쓸 수 있는 무언가가 쌓이는 것 아닐까.
솔직히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현실은 나를 붙잡고 있으면서도 이상하게 글감도 함께 준다. 지치고, 흔들리고, 피곤하고, 다시 일어나는 이 반복되는 일상이 결국 여행처럼 나를 어디론가 데려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 해도, 나는 여전히 오늘도 떠나지 못했다. 시간이 없어서, 돈이 없어서, 일정이 있어서… 이유를 대자면 끝이 없다. 그래서 이제는 이유 뒤에 숨지 않기로 했다. 떠나지 못하는 이 시기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억지로 달리지 않는 대신, 지금은 이렇게 잠시 멈춰 서보기로 했다.
모순된 말 같지만, 나는 떠나지 못하는 날들 속에서 조금씩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게, 여행을 쓰는 직장인의 진짜 현실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내 안에서는 어떤 출발선이 조용히 그어지고 있다는 것.
다음 편에서, 나는 결국 떠나지 못하는 대신 다른 방식으로 떠나는 이야기를 꺼내보려 한다. 아주 오래전 여행의 조각을 꺼내, 글로 다시 떠났던 그 밤을.
—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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