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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14

[텃밭] 노는 땅은 볼 수 없지 어릴 때 집에 할머니가 없으면 바로 베란다 창문을 열어봤다. 우리 집은 시영아파트 드넓은 단지 내에서도 외곽(표준어는 아니지만 더 적확한 표현이라면 ‘가생이’라고 하겠다.)에 자리한 동이어서 우리 집 베란다 창문을 열면 뒤편으로 마주한 물류공장 창고가 있었고. 그 사이에 자리한 조금 넓은 아파트 뒷 화단이 있었다. 그리고 그곳은 알음알음 아파트 아주머니들이 작은 밭을 일구는 자리였다. 할머니는 늘 그곳에 계셨다. 아파트 뒷 화단으로 들어서면 얼기설기 울타리를 쳐놓은 비슷한 크기의 밭이 두 개 있다.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이 우리 할머니 밭이었고 그 옆은 (기억으로는) 3층 아주머니네 밭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세 개의 큰 개나리 나무가 얽혀 만든 작은 개나리 동굴이 있었고, 그 개나리 동굴을 끼고돌면 왼.. 2020. 9. 13.
[잔디밭1] 드러누으면 내 침실 어릴 적 사진 중에 내가 참 좋아하는 사진이 하나 있다. 유치원에 다니던 때의 사진이다. 유치원 단복은 위아래 노란색이었고, 빨간 체크 모자를 썼다. 좋아하는 그 사진은 내가 아파트 화단 잔디밭에 얌전히 앉아 있는 사진이다. 푸릇푸릇한 잔디밭 위에 노란 단복을 입은 어린 내가 수줍게 웃고 있다. 이 사진을 좋아하는 것은, 사진에는 이제 막 새로 풀을 뻗기 시작한 밝은 초록빛 잔디와 노란 옷의 색이 수줍게 웃는 내 얼굴과 참 잘 어울려서 이다. 이 사진은 옆 동에 사는 언니가 그날따라 유치원 단복을 입은 노란 옷의 내가 귀엽다고 찍어준 사진이라고 한다. 나도 살짝 기억이 나는 사람이다. 그때 시영아파트에는 나와 동갑내기들이 참 많았다. 15동에도 나와 동갑인 남자애가 하나 있었고, 나이 터울이 많이 나는 .. 2020. 9. 6.
[박하] 손바닥에 스민 박하향 어릴 적 하도 온 동네 뛰어놀아서 모르는 풀과 꽃, 나무가 없을 정도였다. 그렇게 생각했지만 대부분은 열매를 맺거나 꽃이 피는 풀과 나무 외에는 잘 알지 못했다. 내 눈에 띄고 아는 것만 알았던 것이다. 자주 얘기했듯 유년 시절의 나는 알아주는 골목대장이었다. 같은 동에서도 라인에 따라 서로 패거리를 삼던 때였는데. 우리 라인의 동생이 옆 라인의 오빠에게 맞고 왔다는 얘기에 바로 쫓아가 발차기 한 방 날리고 왔을 정도였다. 지금에서야 한 가지 고백을 하자면 사실 엄청 무서웠다. 겁이 많아서 내가 맞으면 어떡하지, 걱정이 들었는데. 나를 따라오는 같은 라인의 아이들의 눈빛이 내게 힘을 줬던 것 같다. 에라 모르겠다는 마음으로 발을 찼는데, 키만 멀대같이 큰 옆라인의 오빠는 겁을 먹었던 것 같다. 서로 마음.. 2020. 9. 1.
[분꽃] 나팔을 닮은 분꽃 귀걸이 초등학교 저학년까지 나는 꽤 말괄량이 골목대장이었다. 내가 살던 시영아파트에는 1층, 2층, 3층으로 나와 동갑내기 한 명씩 있었고, 그 자매들(형제는 없이 모두 자매만 있는 세 집이 나란히 1, 2, 3층에 있었다.)과 아파트 옆 라인의 아이들 몇 이렇게 매일 어울려 놀았다. 시영 아파트 화단은 넓었고 단지는 크고 우리가 마음껏 뛰어놀고도 넉넉했다. 뒷 화단으로 앞 화단으로, 지하실로 옥상으로 또 아파트 상가에서도 지하의 슈퍼부터 3층 목욕탕 위 상가 옥상까지. 온 동네 다니지 않는 곳 없이 샅샅이 놀며 다녔다. 아파트 단지는 넓었으나 놀이터는 두 개뿐이었고, 두 놀이터는 내가 사는 동에서 멀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14동 주변에서만 뛰어놀았던 것이다. 화단에 심긴 수많은 풀과 나무, 꽃은 신나는 .. 2020. 8. 30.
[가시나무] 더 이상 무섭지 않은 가시나무는 노래 제목만이 아니었다. 낮은 덤불로 넓게 자리하는 가시나무는 짙은 청록빛으로 삐죽삐죽 솟은 가시와 같은 잎이 위협적이다. 그래서 주로, 각 아파트 단지마다 지하실 창문 앞에 가시나무가 있었다. 단지가 넓은 시영아파트는 지금과 달리 지하 주차장이 없었다. 대신 아파트마다 지하실이 있었다. 그 지하실에는 주로 해당 라인의 주민들이 알음알음 쓰지 않는 짐을 두곤 했다. 낡은 자전거, 쓰지 않는 공구 등 말이다. 그래서 굳게 닫힌 지하실의 문은 늘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게다가 뒷밭으로 가면 지하실 창문 앞마다 무시무시한 가시나무가 자리하고 있어 그곳에 대한 환상은 더욱 커져만 갔다. 초등학교 저학년까지 나는 알아주는 골목대장이었다. 놀이터, 단지 상가, 아파트 화단 잔디밭 등등 어디서든 뛰어놀던 아.. 2020. 8. 26.
[낙엽더미] 제일 안전한 나의 침대 당시 내가 살던 시영아파트는 경사진 면을 깎아 땅을 다지고 단지를 세웠다. 그중에서 내가 살던 14동은 아파트 단지 가장자리에 위치해서 뒤로는 바로 경사진 면을 깎은 담이 있었다. 그리고 그 위로는 물류창고와 같은 곳이 자리했다. 2층이던 우리 집과 높이가 비슷해서 베란다에서 물류창고가 살짝 내려다보였다. 지금 생각하면 아파트 2층보다 조금 낮은 높이 정도의 담? 벽?이었는데. 당시에는 엄청나게 높은 벽과 같았다. 13동부터 15동까지 뒷 화단은 경사진 면을 깎은 높은 담으로 둘러 이어져 있었다. 그 높은 담 위로는 각양각색의 나무가 심겨 있었다. 그러니까 우리 아파트 뒷 화단에서 그 높은 담을 올려다보면 무성한 나뭇잎이 있었던 것이다. 우리 집 바로 뒤에 자리한 물류창고는 나무를 심지 않았다. 그래서 .. 2020. 8. 25.
[버드나무] 닿을 것 같은 도로에는 은행나무 또는 플라타너스, 지방의 작은 마을에는 몸통이 큰 수호 나무, 공원에는 벚나무 등과 같이 장소 하면 떠오른 나무들이 있다. 내가 살던 시영아파트를 생각하면 나는 늘 버드나무가 떠오른다. 몸통이 굵고 기다란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것 같은 버드나무, 바람에 살랑살랑 움직이던 그 가지와 잎들. 버드나무는 가느다란 가지를 길게 늘어뜨리고 있고 잎도 길쭉한 모양이다. 연둣빛 잎이 익어가다 짙은 풀색이 되고 이어서 잎을 떨구면 가을, 겨울이 왔다. 길쭉한 이파리로는 피리도 불었다. 거친 잎은 두 겹이 되게 접어 입술 사이에 넣고 프~ 하고 바람을 불면 소리가 나는데. 나는 잘 못해서 늘 입술만 아팠다. 이 풀피리를 알고서는 신이 나서 엄마에게 알려주려고 이파리 몇 개 뜯어 집에 가져갔는데, 엄마는 .. 2020. 8. 24.
[덩굴장미] 향기로운 오월의 오후 대학을 다닐 때, 장미농장을 한다는 선배의 말에 조금 놀랐다. 나에게 장미는 아파트 화단에서 피어나 1층 벽을 타고 아파트 입구 양 옆을 가득 채우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야생의 장미를 알고 또 꽃집에서 파는 장미를 선물하길 좋아하면서도. 정작 장미가 농장에서 길러질 수 있다는 단순한 생각은 못했던 것이다. 내가 살던 시영아파트 14동 1층에는 덩굴장미가 아름답게 피었다. 우리 집은 2층이었고 1층에는 나와 동갑내기가 있는 가족이 살았다. 사실 3층에도 나와 동갑내기가 있는 가족이 살았다. 재밌는 것은 1층, 2층, 3층 모두 딸만 있다는 것이다. 나와 동갑내기가 하나씩 있었고, 아랫집은 외동이었고 우리 집과 윗집은 딸 셋이었다. 1층 윤O네는 덩굴장미가 부엌 베란다 창 밑까지 가득 피어올라와도 그냥 두었.. 2020. 8. 23.
[복숭아] 개복숭아 나무의 신비 시영아파트는 화단이 넓었다. 단지도 넓었고, 5층짜리 동과 동 사이 간격도 넓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단지가 컸던 것이 아니라 내가 작았던 것이다. 내 유년을 고스란히 가진 시영아파트는 내가 스무 살 때 재건축이 되어 사라졌다. 그리고 지금 그 자리에는 훨씬 높은 층을 가진 새 아파트가 들어선지도 벌써 십여 년이 지났다. 아파트 단지가 좁아진 것은 아닌데, 어릴 적 기억보다 훨씬 좁고 답답한 기분이다. 아마도 내가 컸기 때문인 것 같다. 어린 내가 거의 동네 화단에서 먹을 수 있는 것은 다 따 먹으며 놀았지만 유일하게 먹지 못한 것이 있다. 바로 복숭아이다. 14동과 13동 사이 넓은 공터가 있는데, 그 공터에는 인도 가까이 복숭아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뒷 화단에 가까이 있지도 않고, 혼자 덩그.. 2020. 8. 21.
[개나리동굴] 우리만 들어가던 아지트 담장을 따라 흐드러지게 핀 개나리는 봄을 알리는 신호다. 버드나무처럼 가느다란 가지를 늘어뜨린 개나리는 가지마다 노란 꽃을 촘촘히 피워 꼭 노란 꽃비 같이 봄을 쏟아낸다. 그러나 나에게 개나리는 무성한 잎을 가진 동굴로 기억에 남아 있다. 내 유년시절의 아지트, 14동 아파트 뒷 화단의 얘기이다. 14동과 13동 사이 조금 넓은 공터로 들어가면 뒷 화단이 나온다. 당시 시영아파트는 옛날 아파트가 그렇듯 단지가 꽤 넓었다. 뒷 화단은 13동, 14동, 15동이 이어져 있었다. 단지 가장자리에 위치했던 세 동은 뒤로는 비탈길을 깎느라 벽을 세운 높다란 담 그 위에 물류창고가 있어 외지고 또 아늑했다. 5층밖에 되지 않는 낮은 단지라 각 동마다 아주머니들은 뒷 화단에 크고 작게 텃밭을 일궜다. 그래서 주로 ‘.. 2020. 8. 19.
[앵두나무] 멈출 줄 모르는 이놈들 어릴 적 나고 자란 서울 변두리의 시영 아파트는 유난히 화단이 많았다. 특히 내가 살았던 14동은 넓은 단지 외곽에 자리해서 아파트 건물 뒤로는 담벼락과 같은 비탈진 길을 깎아 벽을 세운 어느 물류회사의 담벼락이 높다랗게 자리했다. 그래서 14동은 건물 뒤로 아지트 같은, 비밀스러워 보이는 뒷 화단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 동과 동 사이가 넓었으며, 다른 동도 앞보다는 뒷 화단이 넓게 형성되어 있었다. 앞으로는 아파트 출입구로 이어지는 인도가 있어서인지 내가 살았던 시영아파트는 유독 뒷 화단이 넓었다. 그리고 화단마다 과실나무가 참 많았다. 복숭아나무는 열매가 푸릇하게 열리면 다 영글지 못하고 하룻밤 새 다 사라졌다. 어른이 되어서야 경비 아저씨가 다 따갔다는 것을 알았다. 개복숭아 나무였고, .. 2020. 8. 18.
[대추나무] 나의 대추나무에 무엇이 걸렸나 시영 아파트, 내가 태어나서 살아온 곳이다. 나의 유년과 십 대는 모두 시영 아파트에서 보냈다. 시간이 흘러 오래된 아파트가 재건축을 하기까지 한 곳에서 내내 살았다. 지금도 나의 부모님은 몇 번의 재건축으로 오랜 시간 변함이 없는 건물은 성당과 전철역뿐인 서울 변두리에서 살고 계신다. 우리 집 작은 방 창문에서 뒷 화단을 보면 잘 보이는 위치에 대추나무 세 그루가 심겨 있었다. 엄마의 말로는 할아버지가 손주 셋을 생각해서 하나씩 심은 것이라 했다. 작은 방은 부모님 방이었고, 나는 종종 작은 방에 들어가 창밖 대추나무를 보곤 했다. 주변의 나무와 어우러져 때로는 대추나무를 못 찾기도 했으나, 엄마가 알려준 위치로 짐작하며 저것이 대추나무겠거니 하고 보곤 했다. 그건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의 일이다.. 2020. 8. 10.
[진달래1] 서울 진달래 화전 어릴 땐 진달래와 철쭉을 구분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는 이른 봄 가볍게 뒷산에 오르면 누군가 한두 방울 뿌려놓은 듯한 앙상한 가지 사이 연한 진달래 꽃을 금세 찾아낸다. 일부러 외우며 알아둔 것도 아닌데, 시간이 지나며 이렇게 자연스레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그렇게 알게 된 것 중 진달래가 식용 꽃이라는 정보도 있다. 나는 서울내기라 산에 들에 가도 무엇이 무엇인지 구분할 줄 모르고 또 무엇을 먹고 못 먹고도 알지 못한다. 그나마 어릴 적 살던 시영아파트가 화단이 넓어 각종 나무와 풀, 아파트 주민들이 알음알음 만들었던 작은 밭의 작물들만 간신히 알 뿐이다. 그에 비해 나의 엄마는 경북 안동 출신으로, 어릴 적 소 풀 먹이며 자란 사람이다. 그래서 엄마와 뒷밭(우리는 아파트 뒷 화단을 뒷밭이라 불렀다.. 2020. 8. 8.
[개나리] 꽃이 피었네 봄이 오는 걸 제일 먼저 알리는 꽃이 몇 가지 있다. 그중 가장 쉽게 접하고 또 쉽게 눈에 띄는 꽃이 개나리이다. 나는 개나리를 보면 때 이른 2월의 봄과 할머니가 떠오른다. 어릴 적 시영아파트에 살았다. 단지가 넓고 아파트 동마다 화단이 넓게 자리해서 충분한 나무와 풀과 꽃을 보며 자랐다. 단지 화단마다 알음알음 김장독을 묻고, 미니 밭을 일구던 옛날 시절이었다. 할머니는 화단에 작은 밭을 일구며 소일거리를 했다. 할머니의 연례행사와 같은 소일거리가 있다. 아직 추위가 물러나지 않은 2월이면, 할머니는 동네 화단에서 개나리 가지를 꺾어와 온 집안에 화병을 만들어 곳곳에 두었다. 신발장 위, 거실 TV 옆, 식탁 위, 베란다 선반에. 놓을 수 있는 곳에는 죄다 앙상한 개나리 가지가 담긴 화병을 하나씩 올.. 2020. 8.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