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으로 산다는 것은 매 순간 미세한 타협의 결을 쌓아가는 과정이다. 조직의 논리에 내 목소리를 낮추고, 대세라는 흐름에 소신을 얹어 보낸다. 그렇게 닳아가는 자아를 마주할 때마다 우리는 자문한다. '나를 나이게 하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단 하나의 가치는 무엇인가.' 5월 29일,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축일은 우리에게 그 묵직한 질문을 다시 던진다.
윤지충 바오로는 1791년 신해박해 당시, 유교적 질서가 절대적이던 사회에서 하느님 앞의 평등과 신앙의 자유를 선택했다. 그는 "천주를 큰 부모로 받드는 것이 도리에 어긋나지 않는다"며 죽음 앞에서도 평온을 잃지 않았다. 그와 권상연 야고보가 흘린 피는 한국 천주교회의 첫 번째 순교라는 찬란한 증언이 되었다.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복자(福者)'로 선포된 이들은, 이제 특정 지역을 넘어 우리 신앙의 뿌리로 살아 숨 쉰다.
전주의 심장부, 붉은 벽돌이 인상적인 전동성당에 서면 공기의 무게가 다르다. 이곳은 바로 윤지충 바오로가 참수형을 당했던 풍남문 밖 순교 터 위에 세워진 성당이다. 화려한 로마네스크 양식의 아치 아래 서서 여행작가로서 기록하는 것은 건물의 미학이 아니라 그 바닥에 고인 결연한 의지다. 황현산 평론가의 말처럼, 참된 문장은 삶을 통과해야 나오듯, 이들의 신념은 죽음이라는 가장 치열한 통과 의례를 거쳐 영원이 되었다.
근처 완주의 초남이 성지로 발길을 옮긴다. 윤지충 바오로가 교리를 배우고 전했던 이곳은 최근 유해 발굴을 통해 그 역사적 실체가 더욱 선명해졌다. 박해의 칼날이 번뜩이던 숲길을 걸으며 생각한다. 신념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내가 믿는 진실을 위해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작은 용기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다시 서울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길, 내 안의 '첫 마음'을 가만히 보듬어 본다. 세상의 눈에는 대체 가능한 부속품처럼 보일지라도, 당신이 지키고자 하는 그 고귀한 가치가 바로 당신의 존재 증명이다.

📍첫 순교의 길을 따라 걷는 성지
전주 전동성당 및 풍남문 (전북 전주) 호남 지역 서양식 근대 건축물 중 가장 오래되고 아름다운 성당 중 하나다. 하지만 이곳의 진정한 가치는 한국 천주교회 첫 순교자의 피가 흐르는 '순교 터'라는 점에 있다. 성당 내부의 고요한 침묵 속에서 초기 순교자들의 뜨거웠던 신앙을 묵상해 보길 권한다. (매일 11:00 미사)
천주교 초남이 성지 (전북 완주) 호남 교회의 발상지이자 복자 윤지충 바오로의 신앙 공동체가 형성되었던 곳이다. 최근 순교자들의 유해가 안치되며 성지로서의 영성이 더욱 깊어졌다. 2026년 현재 운영 중인 '바오로 기념관'에서는 디지털 전시를 통해 신해박해의 역사를 생생하게 만날 수 있다.
💡 여행작가의 짧은 메모
- 알아두면 좋은 용어: 복자(福者)란? 거룩한 삶이나 순교를 통해 덕행이 증명된 이에게 교회가 공식적으로 부여하는 칭호다. 성인(聖人)의 전 단계로, 시복(諡福)이라는 엄격한 재판 과정을 거쳐 선포된다.
- 시복시성(Beatification and Canonization)의 단계 가부 조사 → 가련자( Servant of God) → 가경자(Venerable) → 복자(Blessed) → 성인(Saint) 순으로 진행된다. 우리가 기리는 윤지충 바오로와 123위 동료들은 현재 '복자' 단계에 있으며, 전 세계 교회가 공경하는 '성인'이 되기 위한 여정에 있다.
- 기록의 영성: 전동성당의 붉은 벽돌을 가까이서 담아보라. 그 벽돌 하나하나가 순교자들의 증언을 기억하는 낱말들처럼 보일 것이다.
- 에티켓: 전주 한옥마을의 활기찬 분위기 속에서도 성당 경내만큼은 정숙을 유지하자. 이곳은 누군가에게는 목숨과 바꾼 신념의 터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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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동성당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완산구 태조로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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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남이성지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이서면 초남신기길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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