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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이 지금

주님 수난 성지 주일, 식어가는 환호 뒤의 여백

by 혜.리영 2026. 3. 29.

뜨겁게 끓어오르던 환호가 차가운 침묵으로 식어가는데 필요한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손바닥을 부딪치며 누군가를 연호하던 열기가 일순간 서늘한 외면으로 바뀌는 것을 볼 때. 우리는 비로소 인간의 마음이 얼마나 얇은 종이 한 장 같은지를 깨닫는다.

한 자리를 지키며 수많은 관계의 계절을 지나왔다. 어떤 날은 구름 떼처럼 사람들이 몰려와 찬사를 보냈다. 어떤 날은 사소한 오해나 기대의 어긋남만으로도 사무실의 공기가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어제의 동료가 오늘의 방관자가 되는 일상의 수난. 그 변덕스러운 파도 속에서 내가 붙들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

오늘 성당 마당에서 건네받은 성지 가지를 만져본다. 바스락거리는 마른 잎의 촉감이 꼭 내 마음의 소리 같다.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향해 겉옷을 깔고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호산나'를 외치던 군중들. 그들은 아마도 자신들의 갈증을 단번에 해결해 줄 화려한 메시아를 기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함성이 "십자가에 못박으시오"라는 서슬 퍼런 칼날로 변하기까지는 채 일주일이 걸리지 않았다.

"수많은 군중이 자기들의 겉옷을 길에 깔았다. 또 어떤 이들은 나뭇가지를 꺾어다가 길에 깔았다. ...... '다윗의 자손께 호산나!'" (마태오 21,8-9)

여행지에서 비슷한 경험을 했다. 찬란한 일출을 기대하며 새벽잠을 설치고 오른 산 정상에서 짙은 안개와 폭우만을 마주할 때. 우리는 쉽게 실망하고 돌아선다.

하지만 기대를 버리고 묵묵히 빗속을 내려올 때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빗물에 씻겨 선명해진 바위의 질감. 안개 사이로 언뜻 비치는 숲의 깊은 속살. 진짜 풍경은 내가 원하는 모습이 아닐 때 비로소 제 얼굴을 드러내기도 한다. 

우리의 신앙도 어쩌면 군중의 환호를 닮아있지는 않을까. 내 기도가 응답 받을 때만 '호산나!'를 외치고, 삶이 수난의 길로 접어들면 슬며시 군중 속으로 숨어버리지는 않았는지.

성주간이 시작되는 오늘, 나는 소란스러운 함성 대신 주님의 고요한 뒷모습을 따라가 보려 한다.

화려한 기적은 없어도, 묵묵히 십자가를 지고 걷는 그분의 발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이제 손에 쥔 성지 가지는 승리의 훈장이 아니라, 내 안의 변덕을 태우고 남은 가냘픈 신뢰의 증표가 된다.

올 한 해, 내게 주어진 십자가가 무엇이든 그 곁을 지키는 단 한 사람의 침묵하는 영혼으로 남고 싶다.

 

환호가 사라진 자리에서, 당신은 무엇을 발견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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