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삶은 가끔 친절한 안내서 대신 무례한 통보의 얼굴로 찾아온다. 9시부터 6시까지, 오래 다듬어온 견고한 일상의 궤도. 그 안에서 나는 늘 안도를 느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알고 있었다. 생의 가장 눈부신 변곡점은 언제나 예고 없이 들이닥친 사건들 사이에서 피어났다는 것을.
퇴근을 불과 몇 분 앞둔 시간. 계절이 바뀌는 길목에서 마주하는 갑작스러운 제안이나 인사 발령.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낯선 직무 앞에 서게 될 때, 우리는 마음에 빗장을 건다.
두려움은 대개 무언가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에서 온다. 그 상상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현재의 불안으로 잠식해 버린다.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성모 마리아의 시간도 아마 그랬을 것이다. 루카 복음은 그 찰나의 당혹감을 숨기지 않고 기록한다.
천사 가브리엘이 나타나 인사를 건넸을 때, 마리아는 '몹시 놀랐'고(루카 1,29)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루카 1,34)라며 되묻는다. 온갖 질문과 의구심이 마음속에 가득했을 것이다. 그 떨리는 목소리는 오늘날 우리가 예기치 못한 삶의 파고 앞에서 내뱉는 비명과 닮아 있다.
하지만 마리아는 그 모든 생각을 뒤로 한 채, 단순한 응답 하나를 건넨다. 여러 말 대신 '네' 하나로.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루카 1,38)
성요셉이 침묵 속에서 몸을 움직였듯, 마리아는 말을 거두고 순명으로 답한다. 그것은 두려움을 지워버린 응답이 아니다. 두려움을 안은 채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네는 순응이다.
여행지에서 기차를 잘못 타서 내린 이름 모를 간이역이 떠오른다. 계획했던 명소는 멀어졌지만, 그곳에서 마주한 낯선 바람과 예기치 못한 빛. 그것들은 오히려 내게 말해주었다.
계획대로 되지 않아도 삶은 계속된다. 때로는 어긋난 길 위에 더 귀한 보물이 숨겨져 있다.
마리아의 '피앗(Fiat)'은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온갖 말과 생각을 뒤로하고 건네는 단순한 '네'. 내 계획의 한계를 인정하고, 더 큰 선(善)의 질서에 나를 기꺼이 내어주는 순명.
당장 모든 것을 이해할 수는 없다. 하지만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란다"는 그 짧은 응답. 그것이 비로소 하느님의 계획을 나의 현실로 들여오는 문이 된다.
불안한 미래를 향해 '네'라고 답하는 것. 여러 말 대신 단순한 응답 하나로 따르는 것. 그것은 나를 부르신 그분의 신뢰를 믿어보기로 하는 용기다.
오늘 하루, 내 일상의 루틴을 흔드는 작은 우연들 앞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그리고 성모님의 그 단순한 응답을 가만히 읊조려 본다.
삶이 내게 건네는 예기치 못한 초대장에, 많은 말 대신 나지막한 '네' 하나를 적어 보낼 수 있기를 바라면서.
오늘 하루 중 많은 말 대신 단순한 '네' 하나로 답했던 순간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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