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의 하순, 가톨릭 전례력의 가장 깊은 자리에 이 대축일이 새겨져 있다. 신앙의 뿌리를 내린 한국 순교자들의 굳건한 삶을 기리는 날이다. 매일 정해진 시각에 책상 앞에 앉아 제 몫을 다하는 평일의 순간들. 그 수수하고 변함없는 반복이 내 삶의 바탕을 오롯이 세워준다. 거창한 명소를 찾아 먼 길을 떠나기보다, 나를 가만히 다잡을 수 있는 고요한 길로 향하기로 한다.
9월 20일은 한국 천주교회의 가장 큰 기쁨이자 자랑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이다. 이 땅에 신앙을 전하고 지키기 위해 삶의 모든 것을 내어놓았던 103위 순교 성인들의 굳건한 신념과 희생을 기억하는 날이다.
순교라는 이름 뒤에 붙는 숭고함 앞에 과한 감상에 빠지지 않는다. 신념을 위해 매일을 성실히 가꾸어 간 사람들의 단단함에 마음이 먼저 닿는다. 정돈된 자리에서 매일의 일을 차분하게 마치는 일, 관계 속에서 적당한 거리를 지키며 내면의 평정심을 유지하는 일. 주중의 흔들림 없는 루틴을 지켜내는 정성이 결국 내 삶을 이끄는 작은 신념이자 중심이 되어준다.

나만의 단정한 궤적을 이어나가는 이들에게 이번 주말 추천하고 싶은 성지는 경기도 안성에 위치한 미리내 성지다.
한국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묘소가 모셔진 이곳은 '은하수'라는 순우리말 이름처럼 아늑하고 울창한 숲에 둘러싸여 있다. 웅장한 대성당의 기운 아래, 묘역으로 이어지는 나지막한 숲길을 따라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화려하게 꾸며진 공간 대신 정갈하게 뻗은 오솔길과 나뭇잎 사이로 떨어지는 햇빛이 공간을 가득 채운다. 거창한 수사나 길어진 기도 대신, 신앙의 뿌리를 지켜낸 이들의 고요한 기운 속을 묵묵히 걷는 것만으로 마음이 단정하게 가라앉는다. 성지 길을 나와 한적한 미산저수지 둘레길을 함께 거닐며 주말의 여유를 다져보기 좋다.
주말 동안 숲길에서 마주한 맑은 공기와 조용한 울림을 안고 다시 월요일의 자리로 돌아온다. 나의 단정한 일상을 다시 일궈낼 정돈된 힘을 얻는다. 삶을 지탱하는 신념도, 나를 돌보는 온기도 매일의 담백한 루틴 속에 살아 있다.
[성지 정보]
- 장소: 미리내 성지
- 주소: 경기도 안성시 양성면 미산성지길 58
- 전화번호: 031-674-1256
미사 시간 및 상세 안내는 방문 전 성지 사무실이나 공식 안내 채널을 통해 최신 정보를 확인하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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