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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이 지금

[성 토마스 사도 축일] 못 자국을 만지고 싶었던 손

by 혜.리영 2026. 7. 3.

 

의심한 사람

토마스는 그 자리에 없었다. 부활한 예수가 제자들 앞에 나타났을 때, 토마스만 방에 없었다. 돌아와 그 말을 들었다. 다들 봤다고 했다. 살아 계신다고 했다. 토마스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내 손가락을 못 자국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못하겠소." (요한 20,25)

교회는 오래 이 장면을 '의심'의 표본으로 읽었다. 영어에는 'a doubting Thomas'라는 관용어까지 생겼다. 쉽게 믿지 않는 사람. 의심 많은 사람. 나는 다르게 읽는다.

간절함이라는 이름의 믿음

못 자국을 보고 싶었던 것은 불신이 아니었다. 너무 사랑했기 때문에. 너무 원했기 때문에. 남의 말만으로는 그 기쁨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직접 만지지 않고서는 실감할 수 없었던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가 다시 살아 돌아왔다는 말을 들었을 때, 달려가 두 손으로 붙잡고 싶은 마음. 그게 의심인가. 그것은 그리움이 극에 달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반응이다. 예수는 그 손을 물리치지 않았다.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요한 20,27)

책망이 아니었다. 그 간절함을 받아준 것이다. 토마스는 그 자리에서 고백했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열두 사도 중 누구도 입에 담지 못했던 말. 예수의 신성(神性)을 처음으로 직접 선언한 고백. 그것은 의심을 거둔 자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의심을 끝까지 붙들고 간 자리에서 나왔다. 흔들리지 않는 믿음보다, 흔들리면서도 놓지 않는 믿음이 더 깊다.

사도, 그 이후

토마스는 이후 인도까지 걸어갔다고 전해진다. 1세기에, 걸어서. 당시 인도는 알려진 세계의 끝이었다. 1972년 교황 바오로 6세는 그를 공식적으로 '인도의 사도'로 선언했다. 못 자국을 만지고 싶었던 그 손으로, 끝까지 갔다.

여행지

인도 첸나이 — 산 토메 대성당 (Santhome Cathedral Basilica)

인도 남부 타밀나두주의 해안 도시 첸나이. 흰 첨탑의 성당이 서 있다. 16세기 포르투갈 선교사들이 토마스의 무덤 위에 세운 곳이다. 지하에 그의 유해 일부가 안치되어 있다. 2천 년 전 그가 걸었던 땅 위에 서는 것. 의심을 끝까지 안고 갔던 사람이 결국 이 먼 곳까지 왔다는 사실을 발밑으로 느끼는 것. 그것만으로 이 성당을 찾을 이유는 충분하다.

경기도 광주 — 천진암 성지

1779년 겨울, 이 산속에 조선 선비들이 모였다. 선교사가 없었다. 서학 서적을 읽다가 스스로 진리를 찾아 나선 사람들이었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은 신앙을, 스스로 탐구하고 교회를 세웠다. 토마스가 소문만으로는 믿을 수 없어 직접 확인하러 갔던 것처럼, 이 선비들도 누군가 전해준 믿음이 아니라 스스로 손을 뻗어 진리를 붙잡으려 했다. 그 간절함의 결이 닮아 있다. 대성당은 아직 완공되지 않았다. 백 년을 기획한 공사라고 한다. 완성되지 않은 그 공간이 오히려 좋다. 믿음도 완성되지 않은 채로, 그렇게 계속 짓는 것이니까. 7월의 천진암은 초록이 짙다. 산이 깊고 공기가 서늘하다. 의심하면서도 결국 끝까지 간 사람의 축일에, 그 자리가 어울린다.

천진암성지 경기 광주시 퇴촌면 천진암로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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