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년과 13개월
1836년 겨울, 열다섯 살 소년이 조선을 떠났다. 마카오까지 걸어서, 배를 타고. 국경을 넘고 또 넘어. 마카오에서 필리핀으로, 다시 상하이로. 9년이 걸렸다. 그 사이 아버지가 순교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돌아갈 수도 없었다. 1845년 8월 17일, 상하이 진쟈샹 성당. 김대건은 조선인 최초의 사제가 되었다. 그리고 13개월 후, 순교했다. 9년을 걸어 얻은 자리를 13개월 만에 내려놓았다. 아니, 내려놓은 것이 아니었다. 끝까지 붙들고 갔다.
13개월의 밀도
짧다고 생각했다. 처음엔 그랬다. 9년을 공부하고 돌아와 겨우 13개월. 그 숫자가 못내 안타까웠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13개월은 결코 비어 있지 않았다. 귀국하자마자 선교지를 누볐다. 외국 선교사들의 입국로를 개척하려 서해 바다를 건넜다. 신자들을 만나고, 고해를 들었다. 조선 땅의 지도를 만들었다. 체포되고, 문초를 받고, 끝내 새남터에 섰다. 시간은 길이로 사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무엇을 향해 있었는가. 그것이 13개월을 가득 채우고도 남았다. 나는 지금 무엇을 향해 있는가. 그 질문 앞에서 한참 멈췄다.
여행지
중국 상하이 — 진쟈샹 성당 (金家巷 聖堂)
김대건이 사제로 태어난 자리다. 원래 성당은 2001년 상하이 도심 개발로 철거됐다. 지금은 원래 자리에서 1km 남짓 떨어진 포동신구에 새 성당이 서 있다. 내부에 김대건 신부의 유해, 척추뼈 일부를 안치한 기념 경당이 마련되어 있다. 철거된 옛 성당의 자재 일부는 국내로 옮겨져 경기도 용인 은이성지에 복원되어 있다. 상하이까지 가기 어렵다면, 은이성지에서도 그 흔적을 만날 수 있다. 사제가 된 자리가 사라졌다는 사실이 오히려 담담하게 다가온다. 장소는 없어졌지만, 그 자리에서 시작된 13개월은 지워지지 않았다.
충남 당진 — 솔뫼성지
소나무 숲 언덕. 솔뫼(松山)라는 이름 그대로다. 1821년, 김대건은 이 솔밭 아래에서 태어났다. 증조할아버지 때부터 천주교 집안이었다. 신앙이 대물림되던 집. 그 집에서 태어난 아이가 열다섯에 바다를 건넜다. 성지에는 생가터와 기념성당, 순례길이 조성되어 있다. 크게 꾸며진 곳이 아니다. 솔숲이 조용하고 바람이 낮다. 9년을 걷기 시작한 곳. 그리고 끝내 돌아오지 못한 곳. 그 자리에 서면, 13개월이라는 숫자가 다르게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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