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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 영화

[레이니 데이 인 뉴욕] 지금을 향해 갈 것이다

by 혜.리영 2020. 5. 30.

 

  영화를 보고 나니, 예술 스웩, 예술 허세를 꽤 멋드러지게 만들어놨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나쁘다 좋다라기 보다는 그런 걸 참 담백하게 만들어놨다는 생각이다. 예술이라는 게 결국 감정적 허세가 없을 수 없고 그것을 비판적으로 보기보다는 그게 예술을 구성하는 면이라는 것을 솔직하게 만들어놨다.

비, 재즈, 피아노, 영화, 술, 젊음, 욕망......

  우디알렌의 이전 작인 '미드나잇 인 파리'를 보고 며칠 후 보러갔던 영화여서 그런지. 아니면 두 영화가 복제판인듯 닮은 점이 많아서인지 비슷한 감성을 유지한 상태로 영화를 봐서, 나는 꽤 재밌게 봤다.

 

# 과거는 지나간 것

  미드나잇 인 파리니, 예술 스웩, 예술 허세를 꽤 멋드러지게 만들어놨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나쁘다 좋다라기 보다는 그런 걸 참 담백하게 만들어놨다는 생각이다. 예술이라는 게 결국 감정적 허세가 없을 수 없고 그것을 비판적으로 보기보다는 그게 예술을 구성하는 면이라는 것을 솔직하게 만들어놨다.

  우디알렌의 이전 작인 '미드나잇 인 파리'를 보고 며칠 후 보러갔던 영화여서 그런지. 아니면 두 영화가 복제판인듯 닮은 점이 많아서인지 비슷한 감성을 유지한 상태로 영화를 봐서, 나는 꽤 재밌게 봤다.

 

# 개츠비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주인공은 자정이 되면 과거의 파리로 갔다. 예술가들이 살아 숨쉬던 그 시절 파리로. 그곳에서 꽤 좋은 자극을 받고 영감을 얻지만 주인공은 과거에 머물지 않고 현실, 지금으로 온다. 과거의 것들은 지금을 더욱 풍부히 살게 하고 또 원하는 것들을 더 명징하게 보게 한다.

  '레이니 데이 인 뉴욕'도 비슷했다. 주인공 개츠비는(이름마저 개츠비라니!) 졸부인 부모님 덕에 경제적 여유를 누리지만 딱히 하고 싶은 게 없는 삶을 살고 있다. 뉴욕을 떠나 아마도 지방의 이름 좋은 대학에서 공부를 하지만 그닥 흥미는 없다. 오히려 겜블러로서 도박꾼 기질을 타고나 쉽게 돈을 따며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서양식으로는 개츠비였다면, 우리나라 식으로 치자면 '한량'이었다. 글공부에 그닥 흥미는 없지만 풍류를 즐기며 삶의 방향이나 목표는 없는 한량. 한량은 경제적 조건이 충족된다는 전제하에 성립될 수 있는 인물이다.

   그런 개츠비는 여자친구와 데이트 겸 주말을 맞아 뉴욕에 오게 된다. 개츠비가 뉴욕에서 만난 것은 각자의 삶을 살고 있는 변하지 않은 듯 변한 고교 친구들. 그리고 변한 듯 변하지 않은 형과 친척들의 모습. 수시로 변하는 뉴욕의 날씨 만큼이나 개츠비는 여러 사람들을 만난다. 개츠비가 타인과 만날 때마다 그들은 익히 알던 모습으로 다가와 낯선 새로운 모습으로 헤어진다. 또 낯설게 헤어졌던 모습으로 만나면 오래전 알던 익숙한 모습으로 인사를 나누게 된다. 개츠비는 지방의 대학에 익숙해지며 자신이 어떤 삶을 바라는가 잊고 있었다고 한다. 짧은 뉴욕에서의 일정에서 만남과 헤어짐을 통해 자신이 무엇을 좋아했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 굉장히 짧은 순간으로 만난다. 그 만남의 키워드는 주로 '챈'이 쥐고 있지만. 재즈, 피아노, 일단 저질러도 좋을 나이.  

 

#애슐리 그리고 챈

  애슐리 또한 영화를 이끄는 또하나의 인물이다. 개츠비가 도시인으로 살다 지방에서 한량의 삶을 살던, 본래 도시인으로서의 자신을 깨닫는 인물이라면. 애슐리는 마치 부농의 집안에서 어려움 없이 자란 순수함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영화와 문학을 꿈꾼다. 도시에서의 하룻밤은 애슐리에게는 정신없는 시간이었다. 애슐리는 모든 순간마다 거절해도 되었다. 또는 그렇게 따라다닐 필요는 없었다. 처음에는 영화감독과 시나리오 작가인 노련한 예술가들의 뮤즈를 찾는 모습인가 싶었는데. 그보다는 바람이 부는대로 흔들리던 갈대같던 어린 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애슐리는 아직 중심이 서지 않은 갈대와 같은 때였다. 그래서 바람이 부는대로 흔들리고 또 바람 같은 유명세에 자신이 더 들뜨기도 한다. 다행히 애슐리의 뿌리는 단단했고, 무사히 돌아온다. 

  개츠비가 한량인 줄 알았던 자신의 내면이 사실은 도시한량이라는 걸 깨닫고 뉴욕에서 머무르기를 택한다면. 애슐리는 커리어우먼인 줄 알았던 자신이 아직은 배움이 더 필요한 준비생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애슐리의 서사 또한 재밌었다. 영화감독, 시나리오 작가, 유명 배우 모두 뮤즈를 찾는 듯 다가오지만 각각 자기 욕망으로 애슐리를 대한다. 애슐리는 감독과 작가의 욕망에는 꽤 정확한 선으로 중심을 지키지만. 유명 배우의 욕망에는 자기도 같이 반응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재밌었다. 아직은 그런 때.

  애슐리나 개츠비에 비해 챈은 자기 삶의 지점이 꽤 정확해 보였다. 명확한 어느 지점을 향해 잘 가고 있는 챈의 모습. 그러나 한 편으로는 매우 예쁜 언니에게 관심을 빼앗겨 일찌감치 자기를 채우고 세우는데 집중해야했던 챈의 모습이 보여졌다. 결핍이 인간을 성장시키는 건가 싶은 것이다. 

  애슐리는 이제 막 자기 결핍을 만나고 경험해 가고 있다면, 챈은 그 결핍의 시간을 통해 자신을 채우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개츠비는, 내가 원하는 것을 직면하고 있기에. 애슐리를 떠나 챈에게로 가는 것이다.

 

# 과거 그리고 미래, 그러나 지금

  '미드나잇 인 파리'도 그렇고 '레이니 데이 인 뉴욕'도 마찬가지로 '지금'에 대해 얘기하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는 지나갔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으니. 비가 왔다 그쳤다 변덕스러운 뉴욕의 날씨처럼, 지금 오락가락하는 마음과 생각도 그대로 지금인 것이다. 같은 비오는 날 애슐리는 속옷차림으로 거리를 헤매게 되고, 개츠비는 재즈바에서 피아노를 치게 된다. 애슐리는 돌아가야 겠다는 지금을 향해 가고, 개츠비 또한 돌아와야 겠다는 지금을 향해 간다.

  마차에서 내린 개츠비와 그대로 타고 가는 애슐리. 그래도 영화는 꽤 양쪽 모두 골고루 희망적이어서.

  아마 개츠비가 챈을 만난 것처럼, 애슐리도 시간이 흘러 누군가를 만나겠지. 그리고 마찬가지로 지금을 향해 갈 것이다.

  촉촉한 스무 살 초반의 시간들을 떠오르게 하는 영화다. 봄비처럼 시원하고 경쾌한 영화였다. 특히 티모시 살라메가 피아노를 치는 장면은, 그 장면만으로 이미 뮤비 한 편, 영화 한 편 다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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