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12 하루(100) 오늘도 오늘이었다. 거창하게 무언가 쓰고 싶었지만, 그냥 오늘이었다. 지난 백일 간 하루도 빠짐없이 어제를 썼다. 일지, 하루의 기록 이라고 이름 붙이고 싶다. 산문도 일기도 아닌 그 사이의 글. 하루의 나에게서 글감을 얻어 글을 썼다. 어떤 날은 감정을 펼쳐 잘 가려 쓰기도 했고 또 어떤 날은 생각을 가지치기해서 쓰기도 했다. 그냥 그렇게 백일 동안 하루의 기록을 썼다. 정말로 백일을 채울 것이라고는, 하루도 빠짐없이 글을 남길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이 작은 성취에 뿌듯하다. 또 백일동안 글과 함께 간단한 글씨를 매일 쓰다보니 어느새 나만의 글씨체가 잡히기 시작했다. 매일 글씨 쓰기는 이후에도 꾸준히 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계속 글을 써야 하는데...... 그리고 이렇게 하루의 기록, 나.. 2021. 6. 29. 구멍난 하루(090) 구멍난 하루였다. 바다를 가기로 날을 잡았지만 가지 못한 날이었다.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덕분에 준비된 구멍인 하루였다.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고 채우려고만 했던 하루를 그냥 비웠다. 어차피 구멍난 하루니까, 구멍난 그대로 보내자. 동네 메밀 맛집이 있다. 이 동네에 이사온 몇 년 전부터 찾아놓고는 한 번 가질 못했다. 일요일은 문을 닫고, 토요일에는 늘 약속에 바빴다. 그러다 잊혀졌다. 프랜차이즈도 아니고, 규모가 큰 가게도 아니다. 오래전부터 자리한 작은 점포인데, 메밀 맛으로 소문이 난 곳이었다. 가봐야지 싶던 마음을 챙겨 점심을 먹으러 갔다. 점심 피크 타임을 지나서인지 가게엔 사람이 없었다. 점심 시간을 넘긴 평일 낮은 이렇게 한가롭구나. 판메밀을 주문하고 기다리다가 만두를 더 시킬까 말까 고.. 2021. 6. 19. 오늘만 하루(082) 특별한 일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으레 미용실에 간다고 하면 심경의 변화를 먼저 떠올리는데, ‘할일이 없어서’가 심경의 변화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퇴근하고 별일이 없었고 며칠 째 앞머리가 눈을 찌른다는 감이 잦아졌던 것이다. 자주 가는 미용실은 없고 지난 번에 한 번 방문했던 동네 미용실로 갔다. 비가 오지만 지금 미용실에 가지 않으면 아마 나로서는 기약 없이 미룰 수도 있는 노릇이다. 미용실 가는 길에 새로운 미용실이 하나 생겼다. 여자 커트 15,000원, 지난 번에 얼마를 주고 잘랐나 기억나지 않아 새로 생긴 미용실은 다음에 가기로 한다. 지난 번 다듬은 머리가 꽤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머리가 많이 길었고 아직은 짧게 자르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래서 층을 주고 다듬어 새 기분을 내려 했는대,.. 2021. 6. 12. 그냥 하루(078) 긴 말을 남기지 않아도, 이런 대화만으로 충분했던 하루도 있다. --------------------------------------------------------------------------------------- : ㅋㅋㅋㅋ뭐가 좋았을까 뭐 있었나? : ㅋㅋ아님 엄마와내가방방떳나? 둘다 정서적으로 안정된게 느껴져서?? : 안정된 일상을 지내는 것 같아서 나도 맘이 좋았어^^ : --------------------------------------------------------------------------------------- 남길 게 아무 것도 없어서 좋았던 그냥 하루 2021. 6. 7. 나의 글밭(075) 이렇게 매일 글을 남기면서 버릇이 생겼다. 하루를 보내며 ‘아 이건 글감이다’, ‘이 생각을 기록해둬야지’ 등과 같이 나의 하루가 글감이 되는 것이다. 평소처럼 보내는 하루하루가 나에게는 새로운 글감이 매일 솟아나는 글밭이 된 것이다. 매일 글을 쓰며 얻은 보물 중 하나이다. 나의 하루에는 다채로운 이야기가 있다,고 문장을 맺고 싶지만. 지금까지 쓴 내용들에서 무엇이 반복되는지도 보이고 또 나의 취약함, 나의 강점도 보인다. 나에 대해서 더 구체적으로 알아가고, 나와 더 가깝게 만나는 시간이 되어 좋다. 2021. 6. 4. 맥주 한 캔(053) 그런 날이 있다. 오래 전에 놓친 하나가, 훗날 십 혹은 백, 천이 되어 돌아오는 일. 딱 그런 날이었다. 오래 전 놓친 하나가 시간이 지나서 딱 하루, 천근만근이 되어 돌아왔다. 여러 날을 흐리게 할만한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딱 하루만 온전히 천근만근으로 짓누를 정도의 일이었다. 오래 전 일을 최대한 복기해내며 상황을 풀어가느라 하루를 다 쏟은 그런 날. 문제의 그 날은 복합적인 날이었다. 그런 날 있지 않은가. 각자의 작은 상황이 겹쳐진 날. 그러다 놓친 작은 하나가, 하루를 짓누른 것이다. 터덜터덜 퇴근하는 길, 그대로 집에 갈 수 없어 어떻게 할까 생각했지만. 나는 또 곧장 집으로 향하는 에스컬레이터에 오른 듯 기계적으로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가는 길 말고는, 조금 돌아 더 걷는 일 말고는. .. 2021. 5. 13. 무난히, 하루(048) 이걸 써야지 생각해 두어도 막상 글을 쓸 때면 다른 얘기로만 술술 써내려가는 날이 있다. 또 어떤 날은 미리 생각해둔 것을 잘 숙성시켜 써나가는 날도 있다. 그리고 어떤 날은 이것을 건져도, 저것을 건져도 마땅하지 않은 날도 있다. 지금이 그렇다. 분명 하루의 시간 동안 나는 다양한 자극과 생각, 느낌, 정서를 겪었는데도. 막상 글로 쓰려니 어느 것도 건져지지 않는 것이다. 어떤 날은 낚시대 하나로 월척을 낚기도 하지만. 오늘 같은 날은 최고의 낚시대를 물고기밭에 걸어 놓아도, 입질만 툭툭 올뿐인 날인 것 같다. 낚시 할 줄도 모르면서, 낚시를 예로 드는 것이 스스로 웃긴다는 생각을 해본다. 여튼, 이런 허튼 소리를 쓸 정도로 건져지는 글감이 없다. 이런 날도 있는 거지. 그리고 그런 날은 무난히 잘 흘.. 2021. 5. 8. 여전히 맑았다(047) 날씨가 마냥 좋아서 걷고 싶었다. 퇴근 후 고민을 하다 오늘은 걷기로 했다. 작은 가방에 지갑 하나 넣어 메고 나왔다. 걸으며 하루를 정리했다. 요즘 자주 하는 생각 중 하나는, 이걸 블로그에 써야지, 이걸 글로 남겨야지. 그러나 막상 쓸 때는 그게 무엇이었는지 생각나지 않는다. 휘발된 것은 그런대로 그리 중요하지 않거나 혹은 느낀대로 날아가고 말아도 되는 것이겠지. 하늘이 높고 맑았다. 걸으며 노을이 지는 것을 보았다. 해변이나 산 등과 같이 자연에서 보는 노을과 다르지만. 탁 트인 대로변을 걸으며 도로를 따라 뚫린 하늘길의 노을을 보는 것도 꽤 운치있다. 나름대로의 도시뷰이다. 파도가 일렁이듯 구름이 몽글거렸고, 파도가 부서지 듯 노을이 짙어졌다. 누군가에게 연락해도 좋을 하늘이라 생각하면서, 누군가.. 2021. 5. 7. 별볼일(038) 별볼일 없는 하루. 그런 날도 있다. 회사에도, 가족에도, 개인 신상에도 별다른 일 없이 무던하게 흘러가는 하루. 올해 들어서는 개인도, 가족도, 회사도 토네이도가 몰아치듯 들이닥쳐 어디에서도 쉴 곳이 없었다. 하나가 끝나면 또 하나가 또는 그 다음 둘이 등장하니. 휴, 한숨 좀 내쉬려하면 거센 바람이 불어닥쳐서 작은 한숨도 쉴 수가 없었다. 그렇게 긴장과 두통의 날이 몇 달 째 이어졌다. 밤에 잠을 못자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오늘은 좀 잘 수 있겠지 싶던 별볼일 없는 하루. 나는 또 쉬이 잠들지 못했다. 습관처럼 책을 몇 줄 읽고, 유투브 영상을 몇 개 보고. 머리맡 스탠드를 끄지 못했다. 불을 끄면 잠들지 못할 것만 같은 마음이 들어, 까만 방에서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것보다. 스탠드 노란 불 .. 2021. 4. 28. 걷는 것(037) 바람이 선선하면 걷고 싶어진다. 특히 4월 말에서 5월 초의 바람은 어디든 또 어디까지든 걷고 싶게 만든다. 아침에 일어나 어떤 기분이었는지 또, 하루를 어떻게 보냈던지. 상관없이 걷고 싶어진다. 머리카락 한 올 한 올 사이로 바람이 갈라 들어오면, 걷고 싶어진다. 너무 딱딱하지도 너무 폭신 하지도 않은 적당한 신발을 챙겨 신고 나와, 걷고 싶어진다. 어깨에 걸쳐 메는 가방이든 백팩이든, 걷고 싶어진다. 블루투스 이어폰이면 가볍고 선으로 이어진 이어폰이면 경쾌하게, 걷고 싶어진다. 며칠 시달린 마음에 터덜터덜 건물을 나왔다. 퇴근할 때의 마음이 매번 같을 순 없지만, 이렇게 물먹은 솜이불처럼 무겁기만 한 때가 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건물 입구를 나올 때까지만 해도 만사 귀찮고 건물을 나서면 바로 내 .. 2021. 4. 27. 가만히 하루가 (010) 사람마다 다르니까. 나는 먼저 연락을 잘 못하는 편이다. 아니 정확히는 목적없이 연락을 잘 못하는 편이다. 주말에 만나자, 영화보러 가자 하다못해 요즘 날씨가 좋다 어떻게 지내? 등과 같은 안부도 목적이 되어 연락을 주저않고 먼저 잘 하는 편이다. 정정한다. 나는 나의 필요로 먼저 연락을 잘 못하는 편이다. 도와줘, 위로해줘, 함께 있어줘 등과 같이. 어제는 퇴근길에 오랜 친구의 경쾌한 안부 전화가 왔다. 그러나 나의 목소리는 그리 밝지 못했다. 요즘 내 속이 밝지 못하기 때문이다. 친구에게 재만 남은 속을 보이지 않으려. 짐짓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얘기했지만, 이내 들키고 말았다. 나는 요즘 힘들어, 평소와 달리 마음이 쉬이 풀어지지 않아. 나의 사정을 아는 친구라 조금더 쉽게 속이 나왔던 것 같다. .. 2021. 3. 31. 어린 나이 2016. 11. 3.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