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에 없는 사람
베로니카는 성경에 나오지 않는다. 복음서 어디에도 그 이름은 없다. 십자가의 길 제6처, 예수가 골고타로 향하던 그 길에서 군중 속을 뚫고 나와 얼굴을 닦아준 여인. 그것이 전승으로 전해질 뿐이다. 이름도 전승에서 왔다. 라틴어 vera와 그리스어 eikon. 참된 형상. 수건에 예수의 얼굴이 새겨졌다는 이야기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어쩌면 실제 이름은 따로 있었을 것이다. 혹은 처음부터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교회는 그를 기억한다. 축일까지 두고.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 행동
베로니카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다. 수건 하나로 십자가를 멈출 수 없었다. 사형 선고를 되돌릴 수 없었다. 군중의 조롱도, 병사들의 채찍도 막지 못했다. 골고타는 그대로였고, 예수는 그대로 걸었다. 그런데도 앞으로 나섰다. 군중 속에서 나선다는 것이 어떤 일인지 생각한다. 다들 비켜서 있거나, 구경하거나, 따라가거나. 그 흐름을 거슬러 한 발 앞으로 내딛는 것. 수건 하나를 내미는 것. 결과를 바꾸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하는 행동. 그것을 무엇이라 불러야 할지 나는 오래 생각했다. 위로라고 부르기엔 너무 작다. 용기라고 부르기엔 너무 조용하다. 그냥 그 자리에서, 지금 손에 있는 것을 내민 것이다. 그것으로 충분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교회는 그 행동을 2천 년째 기억하고 있다. 나는 오늘 누군가에게 수건을 내밀었는가. 그 질문 앞에서 한참 머물렀다.
여행지
이스라엘 예루살렘 — 비아 돌로로사 (Via Dolorosa)
고통의 길이라는 뜻이다. 예수가 사형 선고를 받고 십자가를 지고 걸었던 길. 예루살렘 구시가지 안에 약 500미터 구간으로 남아 있다. 14처 중 여섯 번째 자리, 베로니카가 앞으로 나섰던 그 지점에는 작은 경당이 서 있다. 금요일 오후 3시, 프란치스코회 수도자들이 이 길을 따라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친다. 순례자들이 함께 걸을 수 있다. 골목이 좁고 사람이 많다. 시장 상인들이 물건을 내놓고,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는다. 그 소란 속에서 기도하며 걷는 것이 오히려 그날의 풍경과 닮아 있다.
경기도 화성 — 남양성모성지
언덕 위에 붉은 벽돌 건물이 서 있다. 스위스 출신 건축가 마리오 보타가 설계한 대성당이다. 성지 안에는 세 가지 십자가의 길이 조성되어 있다. 성경에 따른 십자가의 길, 성모님과 함께 걷는 십자가의 길, 생명수호를 위한 십자가의 길. 각각 다른 결로 예수의 수난을 묵상하도록 이끈다. 야산 오솔길을 따라 걷는 야외 십자가의 길이 특히 좋다. 7월이면 초록이 짙다. 나무 사이로 각 처의 조각들이 놓여 있고, 걷는 것만으로 기도가 된다. 베로니카의 축일에 이 길을 걷는다면, 제6처 앞에서 조금 더 오래 서 있게 될 것이다. 수건 하나를 내밀었던 그 자리에서.
'매일이 지금'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초복] 엎드려 숨을 고르고, 온기로 속을 채우다 (0) | 2026.07.15 |
|---|---|
| [실버데이] 은은하게 깊어지는, 세월의 빛깔 (1) | 2026.07.14 |
| [세계 인구의 날] 숫자가 아닌, 사람이 머무는 자리 (1) | 2026.07.11 |
| [성 베네딕토 축일] 기도하고 일하라 (0) | 2026.07.11 |
| [정보보호의 날] 연결을 끊고, 나를 지키는 시간 (1) | 2026.07.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