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도들의 사도
2016년, 교황 프란치스코는 마리아 막달레나의 기념일을 ‘축일’로 격상했다. 오랫동안 그녀는 편견의 역사 속에 갇혀 있었다. ‘죄 많은 여자’라는 낙인이 그녀의 이름 뒤에 유령처럼 따라다녔다. 그러나 복음서의 진실은 다르다. 그녀는 예수를 도와 사역을 이끈 든든한 조력자였고, 모두가 두려워 도망친 골고타의 십자가 아래를 끝까지 지킨 여인이었다.
교회는 마침내 그녀에게 가장 명예로운 이름을 돌려주었다. ‘사도들에게 파견된 사도’. 지위는 회복되었으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화려한 칭호가 아니다. 그 이름 뒤에 가려진 그녀의 지독한 ‘머무름’이다.
자리를 지킨다는 것
주님을 따르던 이들은 많았다. 기적을 행할 때 환호하던 군중도, 마지막 만찬에서 목숨을 바치겠다던 제자들도 있었다. 그러나 칼날 같은 공포가 들이닥치자 모두가 자리를 떠났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떠나지 않았다. 숨이 끊어지는 십자가 아래에 있었고, 시신이 누운 차가운 빈 무덤 앞에 있었다. 날이 밝기도 전, 어두운 새벽부터 그 무덤 곁에서 울며 자리를 지켰다. 부활을 가장 먼저 전한 사람이 왜 그녀였을까. 대단한 자격을 갖춰서가 아니다. 위험하고 슬픈 자리를 떠나지 않고 끝까지 버텼기 때문이다. 떠나지 않았기에 주님을 가장 먼저 만났다.
우리는 너무 쉽게 자리를 옮긴다. 이익을 따라, 마음의 편안함을 따라 흔들린다. 막달레나의 축일은 그 머무름의 무게를 생각하는 날이다. 어둠 속에서도 신실하게 제 자리를 지키는 일. 집필자가 매일 마주하는 고단한 일상과 얄팍한 신앙 앞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묵직한 숙제다.
여행지
프랑스 — 생막시맹라생트봄(Saint-Maximin-la-Sainte-Baume) 예수 부활 이후, 마리아 막달레나가 바다를 건너와 남은 생을 보냈다는 전승이 깃든 곳이다. 험준한 바위산 깊은 곳에 자리한 동굴 성지다. 화려한 제단 대신 거친 바위벽이 순례자를 맞이한다. 성녀는 이 어둡고 고독한 동굴 속에서 오직 신의 시선만을 바라보며 평생을 머물렀다. 사방이 가로막힌 동굴의 적막함이, 오히려 세상의 소음을 지우고 내면의 목소리에 집중하게 만든다. 그 고요함 속에서 성녀가 지켜낸 신앙의 종착지를 바라본다.
충남 예산 — 여사울 성지 프랑스의 동굴이 성녀가 머물렀던 종착지라면, 예산 여사울은 조선의 신앙이 시작된 출발지다. 조선 최초의 여성 회장인 복자 강완숙 골롬바가 태어나 신앙을 싹트게 한 영적 고향이다. 그녀 역시 양반가의 서녀라는 한계를 깨고 진리를 알아봤으며, 박해의 칼날 앞에서도 주님을 모시기 위해 가장 위험한 자리를 끝까지 지켜내다 순교했다. 여사울 성지에는 거창한 대성당이 없다. 나지막한 돌담과 너른 들판이 사방으로 펼쳐질 뿐이다. 7월의 뜨거운 태양 아래 내포의 푸른 들판을 가만히 응시한다. 국경과 시대를 넘어, 가장 위태로운 자리를 끝까지 지켜냈던 두 여성 신앙인의 단단한 발자취가 그 들판 위로 겹쳐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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