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님의 조부모를 기억하며
조용하고 평온한 일요일 아침이다. 7월의 네 번째 주일인 오늘, 교회의 달력은 ‘세계 조부모와 노인의 날’을 지목한다. 고령화와 핵가족화의 그늘 속에서 노인들이 사회적으로 소외되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교황 프란치스코가 예수님의 조부모인 성 요아킴과 성녀 안나 기념일과 연계해 제정한 날이다. 올해로 여섯 번째를 맞이한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고 효율성만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세상이다.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늙어감은 종종 쓸모없음이나 도태로 치부되곤 한다. 그러나 주름진 손으로 낡은 묵주를 굴리며 말없이 성당 뒷자리를 지키는 노인들의 뒷모습을 가만히 응시한다. 노년의 시간은 결코 쇠퇴의 계절이 아니다. 삶의 모든 풍파를 견뎌내고 마침내 가장 본질적인 것만 남은, 단단하고 깊은 영성의 계절이다.
대를 이어 흐르는 기억의 무게
신앙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는다. 누군가의 끈질긴 기도와 눈물, 그리고 삶을 통한 증언이 있었기에 오늘 내 앞에 전해진 것이다.
예수님의 조부모인 요아킴과 안나가 묵묵히 기도로 구원의 역사를 준비하고 다음 세대를 키워냈듯, 우리 곁의 노인들은 가문과 공동체의 ‘기억을 지키는 파수꾼’들이다. 그들의 기억이 멈추면 역사도, 신앙도 맥이 끊긴다.
우리는 너무 쉽게 앞만 보며 달린다. 내가 딛고 선 이 단단한 땅이 누구의 헌신 위에서 다져진 것인지는 오래 생각하지 않는다. 조부모와 노인의 날은 내 신앙의 뿌리, 내 삶의 시초를 향해 고개를 숙이는 날이다. 어설픈 젊음의 오만을 내려놓고 선조들이 지켜온 신앙의 유산을 돌아보는 일. 그것은 지쳐가는 현대의 신앙 앞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가장 정직한 응답이다.
거친 돌벽의 연속성과 산길 위의 줄무덤
대를 이어 흐르는 신앙의 기억은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성녀 안나 성당(Church of Saint Anne)에 깊이 배어 있다.
예수님의 외조모인 성녀 안나와 외조부 성 요아킴이 살았던 생가 터에 지어진 성당이다. 오랜 세월을 버텨낸 웅장한 로마네스크 양식의 돌벽이 장엄한 고요함을 뿜어낸다. 화려한 장식 대신 시간이 빚어낸 묵직한 침묵 속에서 순례자들은 깨닫는다. 한 세대의 소박한 믿음이 어떻게 성모 마리아라는 다음 세대를 키워냈고,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라는 구원의 결실로 이어졌는지 그 지우기 힘든 기억의 연속성을 바라본다.
외국의 돌벽 성당이 대를 잇는 신앙의 장엄한 종착지라면, 우리 땅 충남 청양의 ‘다락골 줄무덤 성지’는 목숨을 걸고 가문으로 전해진 대물림의 신앙을 증언하는 숲길이다.
한국 천주교회의 대표적인 신앙 가문인 최양업 신부의 가문(경주 최씨)이 박해를 피해 숨어들어 교우촌을 일구었던 영적 터전이다. 할아버지 최인주가 처음으로 이곳에 숨어들어 신앙의 뿌리를 내렸고, 그 단단한 토양 위에서 아버지 최경환 성인과 아들 최양업 신부라는 위대한 신앙의 열매가 맺혔다.
성지의 나지막한 산길을 따라 걷다 보면, 이름 없는 순교자들이 가족 단위로 묻힌 줄무덤들이 점점이 누워 있다.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아버지가 아들에게 칼날 앞에서도 전해 주었던 묵직한 기억의 흔적이다. 일요일 오후, 정적만이 흐르는 고즈넉한 줄무덤 숲길을 느리게 걷는다. 시대를 넘어, 주름진 손으로 신앙의 등불을 밝혀 나에게까지 전해준 모든 신앙의 조부모들을 생각하며 깊은 감사의 기도를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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