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사진 중에 내가 참 좋아하는 사진이 하나 있다. 유치원에 다니던 때의 사진이다. 유치원 단복은 위아래 노란색이었고, 빨간 체크 모자를 썼다. 좋아하는 그 사진은 내가 아파트 화단 잔디밭에 얌전히 앉아 있는 사진이다. 푸릇푸릇한 잔디밭 위에 노란 단복을 입은 어린 내가 수줍게 웃고 있다. 이 사진을 좋아하는 것은, 사진에는 이제 막 새로 풀을 뻗기 시작한 밝은 초록빛 잔디와 노란 옷의 색이 수줍게 웃는 내 얼굴과 참 잘 어울려서 이다.
이 사진은 옆 동에 사는 언니가 그날따라 유치원 단복을 입은 노란 옷의 내가 귀엽다고 찍어준 사진이라고 한다. 나도 살짝 기억이 나는 사람이다. 그때 시영아파트에는 나와 동갑내기들이 참 많았다. 15동에도 나와 동갑인 남자애가 하나 있었고, 나이 터울이 많이 나는 누나가 있었다. 그리고 그 누나가 나를 참 예뻐했다. 그 누나는 여동생을 갖고 싶었던 것 같다. 그때의 시영 아파트는 그 넓은 단지가 하나의 동네인 듯, 14동 15동 할 것 없이 동갑내기는 몇 동 몇 층에 사는지 속속들이 알고 지냈다.
시영 아파트의 잔디밭은 늘 푸릇했다. 돗자리를 깔지 않아도 털썩 주저앉았고 때로는 떼굴떼굴 구르기도 했다. 물론 하수구 물이 지나가는 근처에는 공벌레가 살고, 개미와 더러는 우리에게 해로운 벌레가 많았을 터인데. 참 잘도 털썩털썩 주저앉았고 벌러덩 드러누웠다. 잔디가 파릇하게 올라오면 폭신폭신하다. 이제 막 자라나느라 뻣뻣한 그 풀이 은근히 힘이 있어서, 쉬이 꺾이고 무르지 않는 것이다. 경비 아저씨가 잔디라도 깎은 날이면, 잔디는 더 힘 있게 서 있는다. 그러면 뻣뻣한 잔디 풀에 손이나 다리게 얕게 베이기도 하지만 그 정도는 괜찮다. 매일 아파트 화단과 아파트 단지를 뛰어노는 우리에게는 이 정도 베임은 상처도 아니다. 피를 철철 흘려도 입으로 쪽쪽 빨아 퉤퉤 뱉고 다시 뛰어놀았다.
잔디밭뿐만 아니라 우리는 아파트 인도에서도 자주 드러누웠다. 당시 아파트는 방역으로 소독차가 다녔다. 하얀 소독약을 뿜는 소독차가 단지를 달리고, 소독약 통을 든 아저씨가 아파트 단지 계단을 오르내리며 소독약을 뿌려댔다. 그러면 우리는 또 신나게 그 뒤를 쫓아다녔다. 좋은 것도 아닌데, 소독차를 따라 뛰고 또 아파트 계단마다 소독약을 뿌려대는 아저씨를 따라 계단으로 뛰어들었다. 앞이 보이지 않아 허우적거리며, 내 뻗은 손에 친구가 닿기라도 하면 예상한 듯 깜짝 놀라며 꺄르르 웃어댔다.
아파트 전체 방역을 할 때면, 같은 라인에서는 집마다 바퀴벌레 방역을 했다. 연막탄을 집집마다 터트린 것이다. 보통 아이들이 유치원, 학교를 가고 나면 집에 터트렸다. 그동안 어른들은 아파트 단지, 해당 라인 앞에 돗자리를 깔고 각자 볼일을 봤다. 서로의 자리를 봐주기도 하고, 별 신경 없이 누워 자기도 했다. 밖에 하루 종일 있어야 해서 주로 봄에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아이들이 돌아오면 다들 중국집 배달을 시켰다. 우리 집은 배달음식을 잘 먹지 않았다. 그래서 연막탄을 터트리는 날이면 나는 짜장면과 탕수육을 먹을 수 있는 일 년에 한 번뿐인 날이었다. 짜장면을 먹고 우리는 다시 아파트 잔디밭을 뛰어놀고, 자기 집 돗자리로 들어가 인도석을 요 삼고 하늘을 이불 삼아 짧은 잠을 자면. 환기를 마친 어른들이 하나둘 아이들을 데리고 들어갔다. 응답하라 1988에 비슷한 장면이 나왔다. 그때, 돗자리에 모여 앉아 있던 이웃들과 우리 집 돗자리가 생각나 피식 웃음이 났다.
그때 그 시영 아파트는 아파트 잔디밭도 인도도 모두 털썩 주저앉으면 내 집 거실이고, 드러누으면 내 집 침실이 되는, 단지가 모두 한 지붕 같던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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