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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이 지금

[목화] 두고 보는 소중함

by 혜.리영 2020. 9. 7.

 

    나는 생화를 좋아한다. 어느 때부터인가 드라이플라워나 인위적인 색을 입힌 안개꽃이 유행했다. 나는 별로 좋지 않았다. 드라이플라워는 꽃을 오래 둘 수 있다는 장점을 내세웠지만 나에게는 말린 오징어(물론 맛있지만) 또는 박제된 곤충과 같이 생기가 없는 손대면 바스러질 허망한 존재같이 생각되었다. 생화는 향기와 촉감 등이 살아 있다. 화분에 키운 꽃이 아닌 이상 나는 꽃다발, 꽃송이 등 꽃을 대할 때 화병에 꽂아두어 생기가 도는 때까지만 좋아했던 것이다. 시들기 시작하면 주저 없이 정리했다. 매정하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각자 다양한 성격과 시선으로 삶을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꽃을 좋아하면서도 나는 꽃을 잘 말려 오래 보관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오히려 말린 꽃은 꼭 죽은 꽃을 미이라로 남겨두는 것 같아서 좋아하지 않았다.

 

    목화도 비슷했다. 언젠가부터 목화가 유행했다. 목화가 유익하고 소중하다는 것은 알지만 내 기준에서는 꽃으로서 존재하진 않았다. 유용한 실용적인 식물. 그러나 살다 보니 목화와 드라이플라워를 다시 보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이제 삼십 대도 거의 끝물에 접어든 어느 해 생일이었다. 내 고등학교 친구는 별명이 파릇이다. 이름을 부르기도 하지만 파릇으로 더 많이 불리는 내 친구는 고등학교 이후로 서로 사는 곳이 멀어 자주 만나진 못했다. 그러나 우리는 몇 년에 한 번 꽤 자주 보면 일 년에 두 번. 이렇게 만나 거의 하루를 훌쩍 어딘가로 떠나 서로의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서로에게 듣는 귀가 열린 사이였다. 친구도 나도 자주 만나는 가까운 사이에게 오히려 속내를 잘 털어놓지 못하는 성격이라. 우리는 만나면 서로의 생활과 활동에서 느낀, 감정과 생각들을 속 시원히 털어놓았다. 누구의 말이 서운했고, 누구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고 등등. 우리는 사실 각자가 속한 공동체에서 꽤 성실한 편인데. 성실해도 속앓이는 하고 있으니 친구와 나는 서로 만나 서로가 알지 못할 자신의 주변에 대해 속시원히 털어놓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서로의 대나무숲이 되어 주는 것이었다. 서로 사는 곳도 멀고 또 하는 일도 꽤 달라서 서로의 대나무숲이 되어주기에 충분했다. 

 

    그런 친구가 결혼을 하고 우리의 사이는 소원해졌다. 내심 서운하기도 했지만, 받아들여야 하는 삶의 흐름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 파릇이 생일 선물로 꽃다발을 보내왔다. 택배로 받게 되는 꽃다발은 처음이었는데, 목화와 드라이플라워로 구성된 꽃다발이었다. 꽤 큰 다발로, 박스를 열어 꽃다발을 보는 순간 나는 생화 못지않게 기뻤다. 아니 생화보다 더 기뻤다. 그리고 친구에게 잘 받았다는 인증샷을 보내고 방 한 켠에 두었다. 그리고 그렇게 삼 년을 그 꽃다발은 한 자리에 있었다. 나는 자취하고 있었는데,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면 제일 먼저 보이는 곳에 꽃다발을 두었다. 그러니까 내리 삼 년 그 꽃다발은 문지기였던 것이다. 밖에서 다양한 감정을 겪어도 현관문을 열면 늘 꽃이 있었다. 목화는 폭신한 그 감촉이 좋아 가끔 톡톡 건드려 보기도 했다. 

 

    때로는 어디도 내뱉지 못한 말을 입안 가득 머물고 집에 들어올 때도 있었다. 문을 열면 목화 꽃다발이 보였고, 그럴 때 가끔 파릇과 대화를 나누던 시간이 떠오르곤 했다. 지나간 시간을 회상할 순 있어도 되돌아 갈 순 없다. 나는 지금의 내 시간에 적응해야 하는 것이다. 자주 만나지 못한 친구가 그립지만, 그 위로가 되어준 꽃다발을 보고 있으니. 소중한 시간이 지나갔어도, 마음에 두고 오래 보는 것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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