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까 나는 식물 키우기 꽝손이다. 놔두기만 해도 된다는 다육이도 내 손에서는 시들시들해지고, 서늘한 곳에 두기만 하면 된다는 이끼 식물도 사온 그대로 더 크질 못한다. 진작 식물 꽝손인 것을 알아서 봄이 되어도 화분을 사거나 하는 일은 잘 없다. 대신 공원이나 도시의 잘 닦인 산길을 걷는 것으로 생명의 기운을 만끽한다.
그러던 내가 얼마전 화분을 하나 샀다. 엄마와 시장에 갔다가 시장 입구에서 화분을 싣고 파는 트럭을 보고 홀린 듯 다가가 구경을 하다 덜컥 산 것이다. 그것도 수경 화분에 담긴 히야신스를. 꽃이 활짝 피어서일까, 향이 짙어서일까. 화분을 사들고 와서 디퓨저가 있던 자리에 두었다. 생화의 향기는 디퓨저에 비할 것이 못 되었다.
평소 디퓨저를 놓지 않다가 선물로 받은 것을 책장에 올려두었다. 은은한 꽃향기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어 나는 디퓨저가 꽤 마음에 들었다. 앞으로도 계속 두어야겠다 생각하며. 디퓨저에 꽤 만족하고 지냈던 것이다. 그러나 내 피부는 만족하지 못했다. 나는 아토피가 있다. 심한 것은 아니나 스트레스나 면역력 약화 등의 상황에서는 아토피가 올라온다. 마치 건강 안전벨처럼 나는 아토피가 올라오면 쉬어야 할 때임을 지각하곤 했다. 그런데 다퓨저를 개봉하고 아토피가 올라왔다. 처음에는 평소처럼 요즘 좀 피곤한가보다 하며 챙겨 쉬었다. 그러나 손등으로 올라온 아토피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평소라면 며칠 푹 쉬면 금세 가라앉곤 했는데 말이다.
그렇게 원인을 모르고 지내다 퍼뜩 디퓨저가 생각났다. 그리고 검색을 해보니 역시나...(성분에 따라 다를 수도 있지만 대부분) 디퓨저는 아토피에 좋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지도 모를 것인데 나는 나의 아토피를 간과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의 피로도와 스트레스에만 반응하는 줄로 말이다. 환경에 민감한 병인데 화학성분이 공기에 가득차게 두었으니......
생생한 꽃향기가 좋았지만 개봉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디퓨저를 다 치웠다. 그리고 연고를 꾸준히 바르나 차차 손등은 좋아졌다. 피부는 좋아졌지만 다퓨저를 두고 향기테라피를 맛본 나의 후각과 심상은 아쉬움이 잔뜩 남았다. 그래서 시장 앞 화분트럭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나보다.
히야신스 키우는 법도 몰라 검색을 해보니 꽃이 지고 나면 꽃대를 잘라주어야 한다고 했다. 집으로 데려온 히야신스는 꽃을 화려하게 피우고 시들고 있었다. 꽃대를 잘라주어야 잎이 더 건강해진다고 하니. 싹뚝 꽃대를 잘랐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가 사온 히야신스가 분가하듯 옆으로 꽃대를 하나 더 키웠다는 것이다. 빼꼼 새로 자라난 아기 꽃대는 너댓 개 꽃을 피우고 있다. 이것도 지고나면 잘라주어야겠지.
초보자에게는 일년살이라는 하야신스를 내년 봄에도 다시 피울 수 있게 꽃공부라도 해야겠다. 생화의 봄을 계속 만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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