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폭격과 같은 일을 처리하고 나서 다시 출근. 하얗게 털린 멘탈은 다시 돌아온 출근길에도 회복되지 않았다. 못 일어날 것 같았는데, 일어났다. 아무것도 챙기지 못할 줄 알았는데, 주섬주섬 간단히 아침으로 떼울 빵까지 챙겼다. 미리 소분해 얼려둔 빵을 미리 꺼내 자연해동 해두고, 커피를 내렸다. 하나도 빠진 것, 늦은 것 없이 출근을 시작했다. 직장인의 루틴은 무서운 것이다.
그렇게도 피곤하던 마음이 어디에서 풀렸냐면, 점심이었다. 회사에서 단체 주문을 받았는데, 느닷없이 밥 말고 쫄면이 먹고 싶었다. 나는 쫄면을 좋아한다. 그렇지만 한 번도 주문하거나, 먹어본 적 없는 식당이기에 첫 쫄면 주문은 도전인 것이다. 쫄면이 맛이 없을 수 있나 생각할 수도 있지만. 맛이 없을 수도 있다. 몇 달 전 집 근처에 체인점인 분식점이 생겼고, 나는 신이나서 쫄면을 포장해왔다. 쫄면이 맛이 없을 수도 있구나. 그후로 그 곳은 가지 않았다. 그래서 이곳 식당에서의 첫 쫄면 주문도 맛없으면 내내 일진이 사나운 것이라 생각하려고 했다. 어차피 사나워진 일진 쫄면 하나로 더 나빠질 건 없었다.
다행히 맛있었다. 쫄깃한 면발과 적당한 양념 그리고 싱그러운 야채까지. 한 그릇 후딱 비우고 나니 마음이 좀 풀렸다. 쫄면 한 그릇에 불면증까지 야기한 스트레스가 느슨히 풀어진 것이다. 아직 쫄면은 내 영혼의 음식 리스트에 없었으나, 이 날로 추가되었다.
입사한 초기에, 나는 스트레스를 끌어안은 퇴근길에는 늘 가나 초콜렛을 샀다. 다른 초콜렛으로는 풀리지 않았다. 오직 가나 초콜렛. 주섬주섬 길거리에서 포장을 뜯어 한 조각 입에 넣으면, 사르르 퍼지는 짙은 초코가 뒷머리를 사르르 풀어주었다. 가나 초콜렛만 가능한 마법이었다. 그때는 통하던 비법이었다. 가나 초콜렛으로도 풀리지 않고 집까지 스트레스가 쫓아오면, 새우깡을 하나 사가지고 갔다. 그리고 저녁 대신 새우깡 한 봉지를 먹었다. 깡새우깡이면 또 짭쪼롬하게 풀렸다. 새우깡은 어려서부터 내 영혼의 음식 리스트 0순위 였다. 새우깡이면 뭐든 다 풀렸다.
나만의 리스트, 나만의 비법, 나만의 것이 늘어갈 수록 행복해졌다. 나만의 것을 잃었을 때는 방황을 했다. 다시 나만의 것이 생겨가니 힘이 났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가를 먼저 헤아리다보면 저절로 풀어지는 마음이란 게 있다. 그러니 하루 더, 하나 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가며 살아야지.
쫄면은 리스트에는 들었으나 아직 순위는 책정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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