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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이 지금

잊지말고, 소보로(049)

by 혜.리영 2021. 5. 9.


부모님 집에 갈 때면 늘 빵을 사가지고 간다. 이사오고 초반에 본가에 갈 때면 빈손으로 가기 머슥해서, 동네에 이름난 제과점 빵을 두어 번 사갔다. 그리고 빈손으로 가는 날이면 늘 빵은 없냐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그 후로 집에 갈 때면 나도 모르게, 집에 가기 전날 저녁 혹은 당일 오전 일정으로 제과점 들리기를 넣어둔다.

내가 집에 가면 늘 빵은 없냐고 묻는 것처럼, 나 역시 집에 가기 전 제과점에 가면 팥빵만 먼저 찾는다. 팥이 담백하게 맛있는 제과점이어서 이곳 팥빵은 나도 좋아한다. 그런데 언제가부터 엄마는 '팥빵은 아빠가 좋아하지'라고 말했다. 그리고 가만 보니, 엄마는 내가 사온 빵에서 팥빵은 다 아빠에게 주고 다른 빵부터 맛을 봤다. 한 번은 일반적인 팥빵이 아닌, 소보로에 팥이 들어간 걸 사갔더니 맛있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또 팥빵에만 꽂혀서, 팥빵만 사갔던 것이다.

'엄마는 소보로를 좋아해' 이번에 사가지고 간 빵 중에 소보로는 없었다. 괜히 머슥해서, 다른 빵을 꺼내며 이게 인기 있대, 베스트 빵이래 하며 건냈다. 엄마는 소보로를 좋아하는 구나. 아빠는 팥빵을 좋아하고, 막내는 피자빵을 좋아한다. 한때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나는 어떤 취향을 갖고 있는지 오로지 나를 탐색하고 나에 대해서만 궁금한 때가 있었다. 물론 이건 지금도 유효하다. 그런데 어느 책에선가, 가족의 관심사, 가족의 취향을 알고 있는가에 대한 내용을 읽고 곰곰히 생각해봤다. 내가 가족의 관심사, 취향에 대해 아는 것은 짐작한 것 뿐이었다. '엄마 팥빵 좋아하잖아'라고 나는 말했고, 엄마는 '팥빵은 아빠가 좋아하지'라고 답했듯이.

다음에 집에 갈 때는 잊지말고 소보로도 잔뜩 사가야겠다. 잊지말고, 팥빵, 소보로, 피자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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