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날은 어제 무얼 했는가 기억나지 않는 날이 있다. 그래서 가끔 다이어리에 어제 뭘 했는가 적기도 한다. '한 일 일기'인 것이다. 할 일을 적는 것이 아니라 그날 내가 완료한 일이 무엇인가 적는 것이다. '근무', '당근 라페 1/2' 평일이니 무사히 출근과 퇴근을 하여 하루 근무를 했으니 하루의 가장 큰 일을 해낸 것이다. 또 점심에 불현듯 바람이 불어, 재택 근무 중 점심도 간단히 떼우고, 사두었던 당근을 손질했다. 당근 채칼을 사야겠다 투덜거리며 흙이 묻은 당근 4개를 손질하고 나니 점심시간이 끝났던 것이다. 그대로 두었다면 '한 일 일기'에 '1/2'라고 적지 않았을 것이다. 그냥 '당근 손질'이라고 적었겠지. 퇴근을 하고 손질한 당근채 반을 양념을 해 쟁여두었다. 새삼 '쟁이다'는 우리말 표현이 참 맛깔난다 생각한다. 아무튼, 손질한 당근채 절반을 양념에 담궜으니, 절반은 완료한 것이다.
보통 평일 하루에 근무 만을 완료하지 않는다. 한때는 한 달만에 책만들기 수업을 들으며 밤낮없이 조사와 쓰기를 했던 때도 있고, 취미 미술을 수강해서 한 장씩 색연필 그림을 그리던 때도 있었다. 이도저도 피곤한 날은 그저 휴대폰을 붙들고 테트리스나 그와 비슷한 조각 맞추기 게임 삼매경에 빠질 때도 있다. 간간이 책을 읽기도 하고, 또 그보다는 더 자주 예능을 찾아 보기도 한다.
성당에서 활동하는 청년단체 나눔과 모임 준비를 할 때도 있으며. 친구를 만나러 저녁 외출을 하기도 한다. 장보러 나갈 때도 있고, 또 한 때는 운동을 매일 다니던 날도 있었다. 어떤 날은 코바늘에 꽂혀 주구장창 뜨개질만 하는가 하면 또 어떤 날은 글씨 연습을 한다고 겉멋 든 캘리만 끄적대기도 한다.
돈 안 되는 자격증만 기웃기웃 관심을 갖다가 문학심리상담사라는 민간 자격증을 따기도 하고. 심리학이 궁금해 학점은행제 수업을 하나둘 야금야금 듣기도 한다. 그러다 이도저도 속이 터질 것 같은 날은 대충 챙겨입고 걸었다. 모로가도 길은 이어져 있고, 이렇게 돌든 저렇게 돌든 길은 멀리 나갈 수도 있고 돌아올 수도 있다.
손이 자꾸 터서 초강력 핸드크림을 치덕치덕 손에 바르고 잠드는 어느 하루에 적어 본 나의 하루, 내가 한 일 모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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