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고약한 것을 꼽자면, 이 계절에는 습도를 제일 먼저 들 것이다. 오뉴월이라는 싱그러운 이름을 가진 이 때에 가장 고약한 것은 습도이다. 장미가 피며 나뭇잎이 짙어가면 순순히 여름을 맞아들일 수 없다는 듯이 장마가 온다. 그리고 장마가 오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신호탄이 바로 습도이다. 습도가 고약한 것은 이 떄문이다. 아름다운 계절에서 싱그러운 계절로 넘어가는 때에 꽉 채운 습기로 모든 욕망을 축축 쳐지게 만든다. 그리고 늘어지고만 싶고 또 모든 것에 불쾌함만 느끼게 한다.
여행을 다닐 때 어느 계절, 어느 날씨이건 가리지 않는데 습도만큼은 가린다. 습도가 높은 날은 아무리 좋은 곳을 가고, 아무리 좋은 음식을 먹어도 니맛도 내맛도 없는 일일 뿐이다. 물에 젖은 스펀지 마냥 축축 쳐지는 몸과 마음이 모든 것에 심드렁하게 만든다. 더욱이 혼자 있는 자리라면 그저 혼자 조용히 삭히기라도 하지. 누군가와 같이 있게 되면 더 힘든 일이다.
동생둘과 간 여행 둘째날은 습도가 높았다. 계획 없는 일정이라 우리는 발길 닿는대로 걷고, 발길 멈추는 대로 쉬었다. 점심이 가까워 시내로 들어서며 높은 습도를 느끼기 시작했다. 빨리 점심을 먹으러 들어가고 싶었다. 에어컨이든, 공기청정기든 기계를 돌려 이 습도를 조절해줄 실내로 들어가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모든 일은 순순하지 않았다.
점심을 먹으러 찾아간 식당은 기다림이 길었으며, 다른 곳으로 발길을 돌렸지만 마땅한 음식점을 찾지 못했다. 다행히 작은 번화가에 들어서 음식점에 들어갈 수 있었다. 무엇을 먹는지도 모른 채 음식을 먹고, 시원한 아아메를 들이키고 나서야 마음 속까지 젖은 습도가 진정되었다. 한풀 가셔서 인지 아니면 이제 남은 일정은 서울로 돌아오는 기차역 밖에 없어서인지. 여전히 습도 높은 바깥을 견딜 수 있었다.
전날 구름 한 점 없이 맑았고, 새벽 사이 비가 꽤 내렸다. 그리고 습도가 높았다.
다음부터는 날씨를 좀더 살펴봐야겠다. 습도가 예상되는 날을 피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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