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것 없이 종종 바쁜 날이 있다.
아빠의 컴퓨터는 오래되었지만, 어른들 특유의 '고장날 때까지 쓴다'는 생각이 오래된 데스크탑을 계속 사용하게 만들었다. 느닷없이 프린트 출력이 되지 않는다며 연락이 왔다. 시간을 내어 본가에 가서 보는데, 나도 처음 보는 오류였다. 프린터 브랜드 홈페이지에 가서 검색을 하고, 또 오류 유형을 파악해서 검색을 하고. 그러다 찾은 해답은 윈도우 업데이트 였다. 오래된 데스크탑 만큼이나 아빠는 윈도우 업데이트를 하지 않고 계속 사용하고 있었다. 오류를 알아내고, 업데이트를 위해 다운 및 실행을 하고, 다시 프린트가 잘 작동되나 확인까지 하니 반나절이 후딱 지나갔다.
실행 파일 기다리는 동안 밥을 먹다가, 업데이트 실행되는 동안 TV를 보다가, 엄마와 수다도 떨다가 그렇게 한낮을 보냈다. 간단한 일을 돌아간 느낌이지만 그래도 쫓기는 일 없이, 떠밀리는 일 없이 느긋하게 바쁜 한낮이다.
그리고 저녁에는 친구를 만나 저녁 겸 맥주 한 잔을 했다. 얼마만의 피맥인지. 평소 먹던 저녁보다 배불리 먹고도, 집에 오니 소화가 다 되었다. 코로나로 재택근무를 하며 자주 아니 매일 저녁을 혼자 먹다시피 했다. 혼자 먹는 저녁은 양이 많고 적고와 상관없이 늘 더부룩 했다. 종종 약속이 있어 나갈 때면 많이 먹고 적게 먹고와 상관없이 늘 가뿐했다. 친구와 저녁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서야 조금 느꼈다. 밥은 같이 먹어야 하나보다. 식사는 혼자보다 함께 해야하나보다. 소화는 내 위장만이 하는 것이 아니라 식탁에 함께 앉아 나누는 대화로도 하는 것이구나.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 고삐가 풀린 듯 쫑알거리던 내 입이 소화제였다. 혼자 먹으면 위장 혼자 애쓰는데, 함께 먹으면 바쁘게 쫑알거리는 입이 함께 애써주는 구나. 밥은 함께 먹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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