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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이 지금

고삐, 가족(093)

by 혜.리영 2021. 6. 23.


가족, 어떤 이름을 붙여도 가족.

초등학교 시절 아람단 활동으로 1박 캠프를 가면 저녁 식사를 마친 후 친구들은 삼삼오오 모여 공중전화 앞에 줄을 섰다. 엄마 또는 가족에게 전화하기 위해서이다. 나는 그들과 함께 줄을 섰지만, 왜 줄을 서서 엄마에게 전화해야하는지 공감하지 못했다. 내일이면 집에 가서 다시 볼 엄마인데. 이렇게 줄 서 있을 시간에 더 놀고 싶은 마음만 가득했다. 그러나 친구들이 모두 줄 서 있어서, 나도 같이 줄을 서 괜히 엄마에게 전화했다.

나는 이런 내가 자립심이 강한가? 생각했다. 그러나 어느날 TV에 나온 정신과 의사의 말로는, 가족과의 관계, 애착이 잘 형성되서 그런 거라고 했다. 하루쯤 떨어져도 애가 타서 보고 싶어하거나 찡찡 거리지 않는 것. 당연히 다시 볼 수 있다는 믿음이 확실하게 자리 잡은 안정된 애착이라고 했다. 잠깐 본 내용을 기억에서 꺼내 쓰는 거라 정확한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대충 내가 이해한 대로 써봤다.

그 얘기를 듣고 조금 안심했다. 나는 가족에 대한 정이 없나 싶었는데. 그게 아니라 안정된 애착의 증거였다고 하니까 마음이 놓인 것이다.

고등학교 때 이런 생각을 하기도 했다. 나는 고삐가 있어야 하는 사람이라고. 그리고 지금 나의 고삐는 집에 묶여 있고, 그 줄이 길고 길었으면 좋겠다고. 나는 고삐 풀린 망아지 같은 사람은 못 되는 것이다. 조금더 크며 마음 속 신앙이 자라나면서는, 나의 고삐가 단단한 신앙에 묶여 있다고 믿었다. 엄마가 내 마음의 고삐를 하느님께 단단이 묶어줬구나 하고 말이다.

갑자기 이렇게 가족에 대한 얘기를 쓰는 건, 드디어 엄마 칠순을 치뤘다. 코시국이라 집에서 가족끼리 오붓하게 했다. 부모님이 나이가 들어가며 내가 뭔가 해야한다는 부담감이 커져간 것은 사실이다. 뭘 하지도 않으면서 마음의 부담만 혼자 키우는 것이다. 마음이란 그렇다. 행동으로 실천하면 그런 마음이 들지 않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으니까 뭐라도 해야겠다 싶은지 마음만 엉뚱하게 커지는 것이다.

우리 자매 셋이 각자의 최선으로 준비를 했고, 셋이 준비한 각자의 최선이 어우러져 즐겁고 기쁜 시간을 보냈다. 집안 행사가 있을 때면 늘 일을 치뤄내는데 급급한 엄마의 모습만 보다가. 이렇게 아이처럼 환히 웃는 시간을 보내는 엄마를 보니 마음이 기뻤다. 칠순에도 방긋방긋 아이처럼 웃을 수 있는 엄마가 예뻤다.

힘든 시간을 겪으며 내 마음의 풍랑이 이제 집에 매인 고삐를 풀었다고 생각했다. 나는 나로서 존재해야지, 나의 객체가 바로 서야지 했는데. 가족의 뿌리는 그런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나는 나이고. 나의 가족은 가족이다. 소는 하나의 고삐만 있겠지만, 나에겐 여러 갈래의 고삐가 있어서 그 중 하나는 나의 원가족에게, 또 하나는 하느님께 그리고 또 하나는 나 자신에게 있다. 그 세 고삐가 단단하게 나를 바로 세워준다. 잠시 놓은 줄 알았던 가족이라는 소중한 고삐를, 소중하게 느낄 수 있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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