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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이 지금

[진달래1] 서울 진달래 화전

by 혜.리영 2020. 8. 8.

 

    어릴 땐 진달래와 철쭉을 구분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는 이른 봄 가볍게 뒷산에 오르면 누군가 한두 방울 뿌려놓은 듯한 앙상한 가지 사이 연한 진달래 꽃을 금세 찾아낸다. 일부러 외우며 알아둔 것도 아닌데, 시간이 지나며 이렇게 자연스레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그렇게 알게 된 것 중 진달래가 식용 꽃이라는 정보도 있다. 나는 서울내기라 산에 들에 가도 무엇이 무엇인지 구분할 줄 모르고 또 무엇을 먹고 못 먹고도 알지 못한다. 그나마 어릴 적 살던 시영아파트가 화단이 넓어 각종 나무와 풀, 아파트 주민들이 알음알음 만들었던 작은 밭의 작물들만 간신히 알 뿐이다.

 

    그에 비해 나의 엄마는 경북 안동 출신으로, 어릴 적 소 풀 먹이며 자란 사람이다. 그래서 엄마와 뒷밭(우리는 아파트 뒷 화단을 뒷밭이라 불렀다)에 가면 먹고 못 먹고 또 풀이름 등을 알 수 있어 좋았다. 엄마는 나에게 그것을 자연스레 말해줬다. 이건 개복숭아라서 못 먹어, 개복숭아가 뭐야?, 복숭아랑 똑같은데 맛이 없어 못 먹는 거야, 그럼 이거는?, 앵두인데 아직 덜 익었어. 뒷밭에만 가면 엄마는 척척박사 아니 그보다 더 신기한 말들을 뱉어내서 나의 궁금증을 채워주었다. 복숭아가 아니라 개복숭아, 만화 영화 속 앵두는 크던데 실제로는 손톱 만하네, 장미는 덩굴져서 피어나고, 개나리는 움집을 만들어. 

 

    그리고 엄마는 내게 진달래를 먹어보라고 내밀었다. 나는 순간, 엄마가 왜 나한테 못 먹는 걸 먹으라고 하는지 혼란스러웠다. 나를 골탕 먹이려는 것인가, 내가 잘 모른다고 놀리는 것인가. 정말 영악한 서울내기 같은 생각이 아닐 수 없다. 나는 학교에서 진달래를 먹어도 된다는 것을 배우지 않았기에, 엄마가 나를 놀리는 것이라 확신했다.

 

    그런데 불쑥 엄마가 손에 쥔 진달래를 입으로 후후 불더니 쏙 먹었다. 아마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이었을 것이다. 정말 기겁을 하고 놀랐다. 얼마나 놀랐으면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을까. 산에서 아무거나 주워 먹거나, 열매를 따먹지 말라고 배웠는데. 엄마는 진달래를 먹었다. 그런데 불쑥 나의 질문은,

 

    “무슨 맛이야? 맛있어?”

 

    엄마는 쏙 내 입에 넣어줬다. 너도 먹어봐.

 

    으웩, 씁쓸한 꽃잎은 어린 내 입에 쓴 약 같았다. 식감도 좋지 않고 밍밍한 풀 맛뿐이었으니 그 나이에 정말 맛없는 것을 먹은 것이다. 그제야 엄마는 이야기해 주었다. 어릴 적 소 풀 먹이려 소등을 타고 마을 뒷산에 가던 일, 진달래가 피면 한 움큼 따와서 진달래 화전을 만들어 먹는 이야기. 나도 화전 만들어줘, 엄마는 서울은 공기가 좋지 않아 꽃이 맛이 없다고 했다. 내가 살던 구로동, 구로공단 바로 옆에 자리한 내가 살던 시영아파트는 공기가 좋지 않았다. 그래도 봄이 오면 뒷밭에는 개나리가 피고, 진달래가 피었다. 뿌연 공기가 심한 날은 밖에 빨래도 널지 못하는 동네였지만, 개복숭아가 열리고 앵두가 맺히던 시영아파트 뒷밭에는.

 

    화전을 만들기에는 맛이 없는 서울 진달래가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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