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영 아파트, 내가 태어나서 살아온 곳이다. 나의 유년과 십 대는 모두 시영 아파트에서 보냈다. 시간이 흘러 오래된 아파트가 재건축을 하기까지 한 곳에서 내내 살았다. 지금도 나의 부모님은 몇 번의 재건축으로 오랜 시간 변함이 없는 건물은 성당과 전철역뿐인 서울 변두리에서 살고 계신다.
우리 집 작은 방 창문에서 뒷 화단을 보면 잘 보이는 위치에 대추나무 세 그루가 심겨 있었다. 엄마의 말로는 할아버지가 손주 셋을 생각해서 하나씩 심은 것이라 했다. 작은 방은 부모님 방이었고, 나는 종종 작은 방에 들어가 창밖 대추나무를 보곤 했다. 주변의 나무와 어우러져 때로는 대추나무를 못 찾기도 했으나, 엄마가 알려준 위치로 짐작하며 저것이 대추나무겠거니 하고 보곤 했다. 그건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의 일이다.
할아버지는 내 나이 일곱 살 때 돌아가셨다. 죽음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고, 당시 상황을 잘 이해하지도 못했다. 친척 어른들이 어두운 표정으로 하나둘 집으로 오고, 통곡이 넘쳐나는 몇 날의 밤이었다. 할아버지는 집에서 돌아가셨고, 집에서 초상을 치렀다. 아파트 베란다 창문에 상(喪) 등이 달리고, 우리 동과 옆 동 사이 조금 넓은 빈 터에 손님용 천막이 쳐졌다. 옛날식 장례였다. 초상을 치르는 동안 며칠 밤새 그 빈터에 손님이 오가는 동안에 항의나 민원은 없었다. 80년대 서울 변두리는 그랬다. 아니 우리 아파트는 그랬다.
일곱 살의 내가 알 수 있는 것이라고는 이제 할아버지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어디론가 가버린 할아버지는 이제 다시 내게 돌아오지 않는다. 나는 큰방과 맞댄 작은 방구석에 얼굴을 박고 울었다. 어두운 표정의 어른들에게 나까지도 우는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소리도 못 내고 끅끅 울고 있을 때, 고모가 다가와 내 빈 등을 쓸어안으며 오열을 했다.
그 후로 할아버지가 생각나면 작은 방에 들어가 대추나무를 봤다. 또 동화에서 본 것처럼 죽은 사람은 별이 된다는 말을 믿고, 할아버지가 생각나면 어스름한 저녁 베란다로 나가 고개만 내밀고 하늘에 뜬 별을 봤다.
대추나무는 재건축과 함께 사라졌다. 재건축으로 이사를 할 당시 나는 지방에 있었다. 이사를 마치고서야 이사 간 새 집에 갈 수 있었는데, 엄마에게 대추나무를 물어봤으나 당연히 알지 못한다는 답변이었다. 나의 엄마는 그리 감성적이지 않은 사람이다.
대추나무 세 그루를 심던 할아버지의 마음은 우리가 대추나무처럼 알알이 잘 영글으라는 뜻이었다고 한다. 딴딴하고 과실이 잘 여무는 대추나무처럼 살라고. 나는 여전히 나의 우는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고 생각하며 혼자 우는 편이다. 나는 지금도 가끔 별을 보며 할아버지 생각을 한다. 나의 대추나무에 무엇이 열렸을지는 언젠가 다시 할아버지를 만나면 알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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