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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이 지금

[안개꽃] 마음이 부풀어 꽃다발이 되었네

by 혜.리영 2020. 8. 11.

 

    학창 시절에 유난히 백일장에 자주 나갔다. 공부를 그리 잘하지도 않고 또 책을 많이 읽은 것도 아니었는데, 글쓰기와 언어 능력을 잘 타고났는지 종종 교내 백일장에서 상을 받기 일쑤였고 그로 인해 교외 백일장도 자주 나갔다. 중학교뿐 아니라 고등학교 때도 그렇게 교외 백일장에 자주 나갔다.

 

    백일장이 열리는 날이면 나는 학교로 등교하지 않고 백일장 장소로 바로 갔다. 당시에는 주로 평일에 열리는 백일장이 많았고, 마로니에 공원 또는 어느 대학이 집합 장소였다. 백일장이 열리는 날은 마음은 소풍이었다. 평일 낮은 학교에 메어있어야만 하는 학생으로서 학교가 아닌 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일이었다. 어디 있어도 아름답고, 무엇을 먹어도 맛있는 평일 낮의 기적. 그건 학생이던 학창 시절이나 직장인이 된 지금이나 같다. 회사만 아니면 어디든 아름다워 보이는 평일 낮의 기적!

 

    나는 꽤 무뚝뚝한 십 대 소녀였다. 중학교 때는 내내 짧은 커트 머리였고, 고등학교는 두발자유여서 기르기는 했지만 별명이 ‘냉혈인간’이던 무심하고 무던한 학생이었다. 체격도 있어서 흔히 말하는 여성스럽고, 소녀스러운 것과는 외형의 거리가 멀었다. 외형이 어떻든, 표현이 어떻든 당시 나는 십 대 소녀였다. 아니 어쩌면 ‘십 대’, ‘소녀’와는 상관없는 ‘내 취향’이었다.

 

    나는 백일장에 가는 날이면 조금 일찍 집에서 나와 집 근처 꽃집으로 가서 장미꽃 한 송이를 삼천 원에 샀다. 내 기억에 고등학생이던 시절 동네 꽃집에서 장미꽃은 한송이 삼천 원이었다. 그리고 꽃을 사서 백일장 장소로 가고, 제일 먼저 만나는 반 친구에게 꽃을 줬다.

 

    이건 주로 반 전체 백일장 참여인 날에만 가능한 것이었다. 나는 예고를 다녀서 그때는 반 전체 참가 백일장이 종종 있었다. 물론 생판 거리감 있는 반 친구에게 주는 것은 아니었다. 나와 어느 정도 가까운 거리에 있는 제일 먼저 만난 반 친구에게 꽃을 주었다.

 

    주로 장미꽃을 주다가 어느 날인가 안개꽃을 샀다. 안개꽃 삼천 원어치만 주세요. 다른 꽃의 조연으로만 쓰이는 안개꽃만 한 다발 가득이라면 어떤 모습일까 궁금했던 것이다. 의외로 안개꽃 삼천 원어치는 꽤 큰 한 다발이 되었다. 그리고 예뻤다. 하얀 안개가 손에 가득 쥐어진 것 같았다. 안개꽃만으로도 이렇게 예쁘다니, 꽃은 다 아름답구나 느꼈던 순간이었다. 그리고 역시 그날도 백일장 장소에 도착하고 제일 먼저 만난 반 친구에게 꽃을 주었다. 우연한 행운이라도 받은 듯 친구는 활짝 웃었다. 안개 꽃다발처럼 부푼 친구의 웃음이 내 마음도 가득 채워주던 어느 날이었다.

 

 

 

덧, 꽃을 주길 좋아하는 내 모습에 흐뭇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꽃을 주기보다 받고 싶었다. 내가 받고 싶은 걸 상대에게 해주라는 가르침을 철석같이 믿고, 내가 꽃을 받고 싶으니 친구들에게 꽃을 주자고 생각했던 것이다. 나는 참 단순하고 순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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