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다닐 때, 장미농장을 한다는 선배의 말에 조금 놀랐다. 나에게 장미는 아파트 화단에서 피어나 1층 벽을 타고 아파트 입구 양 옆을 가득 채우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야생의 장미를 알고 또 꽃집에서 파는 장미를 선물하길 좋아하면서도. 정작 장미가 농장에서 길러질 수 있다는 단순한 생각은 못했던 것이다.
내가 살던 시영아파트 14동 1층에는 덩굴장미가 아름답게 피었다. 우리 집은 2층이었고 1층에는 나와 동갑내기가 있는 가족이 살았다. 사실 3층에도 나와 동갑내기가 있는 가족이 살았다. 재밌는 것은 1층, 2층, 3층 모두 딸만 있다는 것이다. 나와 동갑내기가 하나씩 있었고, 아랫집은 외동이었고 우리 집과 윗집은 딸 셋이었다. 1층 윤O네는 덩굴장미가 부엌 베란다 창 밑까지 가득 피어올라와도 그냥 두었다.
그래서 늘 오월이면 짙은 잎과 짙은 꽃이 짙은 향을 피우며 자라났다. 아파트 입구에 들어설 때마다 야생의 장미향이 가득했고, 그 길은 집으로 가는 길이라 더 좋았다. 물론 오월이 아닌 때는 사실 무섭기는 했다. 특히 겨울이 오면 앙상한 덩굴이 가시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그때는 마치 야수가 살고 있는 성의 입구와도 같지만, 무섭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오월의 장미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내가 장미를 좋아하던 건 그 야생의 장미 덕분인 것 같다. 장미는 가지에만 가시가 있는 게 아니라 잎도 삐죽삐죽하고 거칠다. 빨갛고 예쁜 꽃과 향긋한 장미향은 거친 잎과 큰 가시에 가까이하기 어려워 보이지만, 어릴 때 그 덩굴장미만큼 좋은 놀거리도 없었다.
소꿉놀이할 때 장미 꽃잎과 잎을 돌에 빻으면 짙은 색을 내어 놀이로 차린 밥상을 화려하게 해 주었다. 또한 야생의 장미 가시는 꽤 크고 두꺼운데, 가지에서 제일 굵은 가시 하나를 똑 떼서 넓은 면에 침을 발라 코 끝에 붙이고는 코뿔소가 되었다고 또는 마녀가 되었다고 뛰어다니며 놀았다. 그 가시는 암만 뛰어도 잘 떨어지지 않아 우리는 종종 누가 제일 굵고 큰 가시 하나를 찾아 코에 붙이나 겨루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아름다운 장면은, 1층, 2층, 3층뿐만 아니라 내가 살던 아파트 모든 라인의 가구들이 서로 인사를 건네는 오후, 하나둘 집으로 들어가는 시간이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들어가는 길은 늘 짙은 장미향과 함께 계단에서 만나는 1층 삼촌 또는 앞집 아저씨, 5층에 사는 고등학생 오빠. 집으로 ‘엄마~’를 부르며 뛰어 올라가면서도 가는 길에 누구든 만나면 인사를 하고 대문을 활짝 열고 살던. 그 향기로운 오월의 오후이다.
덩굴장미는 윤O네가 이사를 가며 모조리 베어졌다. 1층으로 이사 온 사람들은 창 밑까지 올라온 덩굴과 잎과 꽃이 거추장스러웠던가보다. 그 후로는 그만큼 아름다운 덩굴장미를 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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