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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이 지금

[개나리동굴] 우리만 들어가던 아지트

by 혜.리영 2020. 8. 19.

 

    담장을 따라 흐드러지게 핀 개나리는 봄을 알리는 신호다. 버드나무처럼 가느다란 가지를 늘어뜨린 개나리는 가지마다 노란 꽃을 촘촘히 피워 꼭 노란 꽃비 같이 봄을 쏟아낸다. 그러나 나에게 개나리는 무성한 잎을 가진 동굴로 기억에 남아 있다. 내 유년시절의 아지트, 14동 아파트 뒷 화단의 얘기이다.

 

    14동과 13동 사이 조금 넓은 공터로 들어가면 뒷 화단이 나온다. 당시 시영아파트는 옛날 아파트가 그렇듯 단지가 꽤 넓었다. 뒷 화단은 13동, 14동, 15동이 이어져 있었다. 단지 가장자리에 위치했던 세 동은 뒤로는 비탈길을 깎느라 벽을 세운 높다란 담 그 위에 물류창고가 있어 외지고 또 아늑했다. 5층밖에 되지 않는 낮은 단지라 각 동마다 아주머니들은 뒷 화단에 크고 작게 텃밭을 일궜다. 그래서 주로 ‘뒷밭’이라고 불렀다. 어릴 적 나의 할머니는 주로 뒷밭에 계셨고, 엄마는 베란다에 빨래를 널다가 베란다 창틀의 화분에 물을 주다가 할머니 잘 계신지 확인하곤 했다. 

 

    그리고 그 뒷밭에는 가시나무도 있었고 개나리나무도 있었다. 개나리가 가지를 늘어뜨리지 않고 온전히 나무처럼 크면 어떻게 될까. 뒷밭에는 세 그루의 개나리 나무가 가지를 얽혀 자랐다. 알다시피 가느다란 개나리 가지들이 얽히고 얽히니 그 사이로 동굴 같은 공간이 생겼고, 아직 체구가 작던 어린 나는 동네 친구들과 그곳에 자주 들어가 있곤 했다. 얽힌 개나리 가지들은 속을 보이지 않게 해 주었다. 그래서 우리는 어른들 몰래 그곳에 들어가 있곤 했다. 모르게 들어가 있다 했지만 아마 다 알았을 것 같다.

 

    개나리 동굴 안은 꽤 넓었다. 동네 친구들 서넛이 들어가도 넉넉한 공간이었고. 우리는 그 안에서 소꿉놀이를 하거나 우리끼리 비밀도 아닌 비밀 얘기를 했다. 당시 성당에는 어린이, 청소년 관련 시설이 잘 되어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비디오, 만화책 대여점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꽤 건전하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좋은 것들만 가져다 둔 것이었다. 엄마는 성당에서 빌리는 건 몇 개든 상관없이 다 빌려줬다. 그래서 나는 성당 비디오 대여점에서 외국의 판타지 청소년 영화들을 자주 빌려봤다. 빌려온 영화에는 대부분 아지트가 등장했다. 나무 위 오두막. 우리 동네 아파트 화단에도 그만한 큰 나무가 있긴 했지만, 오두막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오두막 대신 친구들과 개나리 덩굴 속으로 들어가 놀았다. 신나게 뛰어놀다가 땡볕에 지치면 개나리 덩굴로 들어가기도 했고, 앵두를 따먹다가 3층 아저씨에게 혼나면 개나리 덩굴 속으로 도망가기도 했다.

 

    나는 꽤 늦은 나이까지 학원을 다니지 않았는데, 친구들이 하나둘 하교 후 학원으로 갈 무렵 혼자 남은 나는 개나리 덩굴에 혼자 들어갔다. 넓고 아늑했던 그곳은 좁고 스산했다. 얼른 그곳을 나왔다. 어느새 내가 자란 것이다. 그리고 나는 아파트 상가의 종합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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