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내가 살던 시영아파트는 경사진 면을 깎아 땅을 다지고 단지를 세웠다. 그중에서 내가 살던 14동은 아파트 단지 가장자리에 위치해서 뒤로는 바로 경사진 면을 깎은 담이 있었다. 그리고 그 위로는 물류창고와 같은 곳이 자리했다. 2층이던 우리 집과 높이가 비슷해서 베란다에서 물류창고가 살짝 내려다보였다. 지금 생각하면 아파트 2층보다 조금 낮은 높이 정도의 담? 벽?이었는데. 당시에는 엄청나게 높은 벽과 같았다. 13동부터 15동까지 뒷 화단은 경사진 면을 깎은 높은 담으로 둘러 이어져 있었다.
그 높은 담 위로는 각양각색의 나무가 심겨 있었다. 그러니까 우리 아파트 뒷 화단에서 그 높은 담을 올려다보면 무성한 나뭇잎이 있었던 것이다. 우리 집 바로 뒤에 자리한 물류창고는 나무를 심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 집 베란다에서 보면 물류창고가 훤히 보였다. 주로 사람이 없었다.
가을이 오면 뒷 화단은 낙엽 천지가 된다. 화단에 심긴 나무에서 떨어지는 낙엽뿐 아니라 높은 담 위의 나무에서도 낙엽이 우리 아파트 화단으로 우수수 떨어졌기 때문이다. 경비 아저씨들에게는 정말 지긋지긋하고 끔찍한 낙엽이었을 것이다. 바람이 불고 기온이 떨어지는 며칠 밤을 지내면 뒷 화단에는 떨어진 낙엽을 모아놓은 커다란 낙엽더미가 대여섯 개씩 생길 정도였다. 그러면 우리는 새로운 놀이를 시작한다.
어린 내 키의 1.5배 정도 높이의 낙엽더미는 굉장한 놀이도구였다. 우리는 다다다다 달려서 낙엽더미로 퐁당 뛰어들었다. 푹신푹신하고 암만 뛰어들어도 무너지거나 풀어지지 않던 낙엽더미는 정말 신나는 놀이터였다. 지금 생각하면 꽤 더럽고 비위생적인 그곳에 우리는 참 잘도 뛰어들었다. 그렇게 놀고 온몸이 낙엽투성이가 되어서 집에 들어가도 그리 혼나지 않았다. 나의 유년에는 밖에서 뛰어놀고 흙투성이가 되어 집에 오는 게 당연하던 때였다. 또 왈가닥이던 나는 흙투성이로 들어오지 않은 날이 없었던 아이였다.
경비아저씨들이 모아놓은 낙엽이기에, 그 더미를 풀어헤치거나 던지며 놀면 혼났다. 경비 아저씨들은 어디 숨어 있다가 귀신 같이, 우리가 낙엽을 던지고 놀면 나타나 혼냈다. 처음에는 이 새로운 놀이도구로 어떻게 놀까 신이 나서 발을 동동 굴렀지만. 몇 번 혼이 나고 나니, 결국 신나는 점핑 대가 된 것이다. 작은 아이가 폭 뛰어드는 것은 낙엽더미를 그리 무너뜨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낙엽더미에 퐁당 들어가 누워 하늘을 보고 있으면 아늑하고 편안했다. 침대 없이 바닥에 요를 깔고 자던 나는, 침대에 누우면 이런 느낌일까, 상상하기도 했다. 파란 하늘에는 구름이 지나가고 가을이 오는 바람이 살랑이는 오후면 그렇게 낙엽더미에 누워 있었다. 위험하지도 더럽지도 않은, 제일 좋아하는 곳이었다. 가을에만 이용할 수 없다는 것이 제일 안타까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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