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에는 은행나무 또는 플라타너스, 지방의 작은 마을에는 몸통이 큰 수호 나무, 공원에는 벚나무 등과 같이 장소 하면 떠오른 나무들이 있다. 내가 살던 시영아파트를 생각하면 나는 늘 버드나무가 떠오른다. 몸통이 굵고 기다란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것 같은 버드나무, 바람에 살랑살랑 움직이던 그 가지와 잎들.
버드나무는 가느다란 가지를 길게 늘어뜨리고 있고 잎도 길쭉한 모양이다. 연둣빛 잎이 익어가다 짙은 풀색이 되고 이어서 잎을 떨구면 가을, 겨울이 왔다. 길쭉한 이파리로는 피리도 불었다. 거친 잎은 두 겹이 되게 접어 입술 사이에 넣고 프~ 하고 바람을 불면 소리가 나는데. 나는 잘 못해서 늘 입술만 아팠다.
이 풀피리를 알고서는 신이 나서 엄마에게 알려주려고 이파리 몇 개 뜯어 집에 가져갔는데, 엄마는 내 얘길 듣고 또 내가 못 부는 풀피리를 푸푸 거리는 것을 듣고는. 남은 잎으로 삐~ 하고는 피리를 불었다. 어린 내가 잘 몰랐던 것은, 우리 엄마는 경북 안동에서 소 풀 먹이던 사람이라는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자꾸 엄마는 모를 거야, 엄마한테 이거 알려줘야지 싶은 마음으로 내가 새로이 안 것을 신이 나서 엄마에게 가져가지만. 매번 엄마는 그것을 이미 알고 있고(당연하게도!) 나보다 더 능숙하기도 했다. 그래서 나에게는 나이가 들어 소를 키우고 싶다는 욕망이 생긴 것일지도 모른다. 어릴 적 소를 키우기엔 이미 커버렸으니......
꽃바람이 불 때는 그 버드나무 아래 누워있으면 하늘도 가지도 잎도 사이로 구름도 모두 반짝였다. 세상이 다 반짝이는 향긋한 시간이 버드나무 아래로 흐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무심하게 옆라인 키 큰 동네 오빠가 제일 늘어진 가지 하나 팔을 뻗어 툭 치고 지나가면. 우리는 쪼르르 일어나 그 가지에 손이 데어 보겠다고 깨끔발을 깡충깡충 뛰었다. 바람이 불고 가지는 살랑이고 아무리 뛰어도 손에 닿지 않는 버드나무 가지는, 그래도 꼭 닿을 것처럼 눈 앞에서 일렁였다.
그런데 세월이 깜빡 지나가는 사이, 그 많던 버드나무가 싹 사라졌다. 시영아파트는 재건축한 때였고, 아파트 단지 안이 아니라도 어릴 적 공원이나 박물관에 가도 자주 보던 버드나무였기에, 그 이유가 무얼까 찾아보니. 어느 해인가 버드나무가 일본의 나무이고 일제의 흔적이라는 이유로 대부분 베어졌다는 기사를 보게 되었다. 어릴 적 흔하게 보던 버드나무가 사라진 자리에 은행나무, 플라타너스가 들어선 것이다. 입이 삐쭉 아쉬웠다.
그런데 지금 일하는 회사 근처 공원에는 버드나무가 있다. 가끔 일부러 출근길을 돌아 공원 담장을 따라 걸을 때가 있는데, 아침 바람과 볕에 살랑이는 버드나무 가지는 여전히 닿을 것처럼 눈 앞에서 일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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