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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이 지금

[미니해바라기] 쫄면 같은 하루

by 혜.리영 2020. 9. 11.

 

    퇴근길에 쫄면이 먹고 싶었다. 분식집에서 맛볼 수 있는 쫄면이 유독 생각나는 금요일 퇴근길이다. 전철역에서 나와 집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24시간 분식집. 동네에서 유일하게 쫄면을 파는 곳이다.

    “쫄면 하나 포장이요.”

 

    나의 주문은 간단했다. 쫄면, 포장. 계산을 하려 나온 아저씨에게 카드를 건네고, 피로가 몰려오는 눈에 힘을 주려 계산대 뒤 선반에 놓인 키 큰 미니해바라기를 바라보았다. 가게는 한산했고 TV에는 외국의 어느 축구리그의 경기가 재방송되고 있었다. 주방에 쫄면 주문을 넣은 아저씨는 해바라기를 보고 있는 나에게 말을 걸었다.

    “내가 키운 건데, 요만하게 나더니 이만큼 컸어요.”

 

    마스크를 쓴 터라 목소리가 둔탁하게 들려왔다. ‘아 예쁘네요’ 평소라면 의례적인 대꾸만 하고 휴대폰만 만지작 거렸을 텐데, 마스크 위로 보이는 아저씨의 눈이 생글생글 빛나고 있어 한마다 붙였다.

    “굉장히 잘 키우셨어요.”

    나의 대꾸에 아저씨는 신이 나서 물꼬를 틔웠다.

 

    미니해바라기 씨앗을 네 개 심어서 모두 싹을 틔웠다고 한다. 그중 시들시들한 두 줄기는 일찍이 뽑아 버리고 튼실하게 크는 두 줄기만 키워냈다. 하나는 쑥쑥 자리서 지금 이렇게 꽃을 피웠고, 하나는 그 옆에서 아직 자라는 중이다. 꽃봉오리 하나 시들어 잃고 또 다른 꽃봉오리를 키워내는 중이라고, 아저씨는 쉼 없이 말을 이었다. 화분을 가리켰다가 줄기, 잎, 꽃봉오리 아저씨의 말수만큼 손도 쉼 없이 여기저기 나의 시선을 끌어당겼다.

 

    아저씨의 말속에 또 손 끝에 뿌듯함이 듬뿍 담겨있었다. 오늘 딸에게도 자랑했다며 사진을 보여주었다. 아마 저 꽃이 피었던 그때부터 오늘을 지나 꽃이 질 때까지 아저씨의 자랑은 쉼이 없을 것 같았다. 

 

    선선한 바람에 꽃향기가 실려오는 저녁이었다. 비록 마스크로 서로 얼굴의 반을 가린 채 마주하지만. 목소리의 경쾌함, 눈빛의 생기는 더 잘 읽을 수 있었다. 

    “이거 사진 찍어도 돼요?”

    “그럼 찍어도 되지~ 찍어요.”

 

    내 말이 아저씨의 어깨를 한껏 추켜올려준 것 같았다. 어깨뿐 아니라 목소리에도 힘이 들어가 말을 이었다. 군대 있을 때는 내무반 난로통 위아래로 진달래와 개나리를 키웠다고 했다. 최전방 부대에 있었는데, 눈이 가득 쌓인 2월에도 내무반 안에서 꽃을 피워냈다는 이야기를 훈장처럼 늘어놓았다. 꽃을 피워낸 훈장은 참 멋진 군대 얘기였다. 못해도 30여 년 전일 텐데, 지금도 생생한 듯 허공에 내무반 평면도를 휙휙 그리며 설명했다. 

    “고만 얘기하고 마늘 좀 까.”

 

    아저씨는 더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듯했으나, 이내 아주머니가 건넨 마늘 바구니를 순순히 들고 앉았다. 그 모습 향긋한 장면이었다. 작은 분식집 주방 선반에서 자라난 키가 큰 미니해바라기는 일주일이 끝난 퇴근길 쫄면 한 그릇이면 피로가 풀릴, 그날 내 하루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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