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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이 지금

[서툰꽃다발] 지금 나를 보내

by 혜.리영 2020. 9. 9.

 

    꽤 인상적인 꽃배달을 받은 적이 있다. 꽃다발을 신청해 준 사람도 또 꽃을 배달해준 사람도 모두 참 아이 같이 단순하고 고운 마음을 가진 이였다. 몇 년 전 성당 활동으로 알게 된 친구가 있다. 우리 둘 사이에는 거의 십 년이라는 차이가 있지만 나에게 친근함을 늘 표현해주는 친구였다. 사실 나는 손윗사람을 잘 대할 줄 모른다. 맏이기도 했지만, 어릴 적부터 주변 친척 형제들은 모두 나보다 십여 년 이상 많아서, 또래에서 벗어난 선배를 잘 대할 줄 몰랐다. 그렇다 보니, 한참 위인 나에게 호의와 친교를 보이는 이들이 새삼 고맙게 느껴졌다. 그때의 나는 할 줄 모르던 것을 하는 것이 좋아 보이고 고마웠던 것이다.

 

    이 친구 또한 그러했다. 물론 우리의 유사점은 많았다. 동문에 동네 사람에 비슷한 전공까지. 유사점이 많다고 모두 친구가 되는 것이 아니듯, 우리는 또 차이점도 많았다. 그런데도 그는 처음부터 내게 친근함을 보였다. 나는 타인에 대해, 좋은 면에 대해서도 잘 말하지 못하는 편인데. 그이는 조잘조잘 나에게 고운 말을 해주었다. 그것이 그이의 매력이겠지. 타인에게 자신이 느끼는 것을 바로 말하고 솔직하게 전하는 것이 매력이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대해 갖는 생각은 주로 나 자신이 기준이어서. 내가 잘하지 못하는 것을 잘하는 그이의 모습이 신기했다. 이 서툰 꽃다발 또한 그렇게 심쿵당한 지점이었다.

 

    무료한 마음으로 회사 업무를 보고 있던 평일의 어느 날, 모르는 번호의 연락이 왔다. 내게 꽃배달이 왔다는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게 꽃다발을 보낼 만한 지인이 떠오르지 않았다. 내 주변 지인이라 함은 느닷없이 불러서 소주잔을 기울일지언정 꽃배달은 택도 없는 일이었다. 꽃배달을 온 이는 회사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플로리스트 준비를 하고 있는 이였다. 연습으로 만든 꽃을 이벤트로 사연을 받아 무료 배달을 하는 중이라고 했다. 누가 보냈는가 물어보니, 역시 그이의 이름이 나왔다. 

 

    꽃다발도 예쁘고, 자신의 연습 꽃을 이렇게 베푸는 준비된 플로리스트도 예뻤다. 회사로 복귀하며, 그이에게 연락을 했다. 익명으로 보냈으나 너무 금세 밝혀진 이름이었다. 그리고 그이는 이벤트에 보냈던 사연을 내게 보내줬다. 

 

     서툰 꽃다발만큼이나 담백하고 솔직한 사연이었다. 나는 겁이 많아서, 이렇게 좋은 표현을 받고 나니 덜컥 겁이 났다. 이렇게 금방 멀어질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나는 종종 대부분의 인연은 다가온 속도로 멀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누군가 금방 다가오면 나는 한 발 물러났다. 금방 멀어질까 두려워서. 그러나 그날의 꽃다발은 서툴러서 마음이 따라갔다. 연습으로 만든 꽃다발이 생각의 불완전함을 알려줬다. 다가온 속도로 멀어진 적은 사실 없었다. 그럴까 봐 두려웠던 것일 뿐. 자신의 마음을 담백하게 전한 그이는 지금의 자신을 나에게 나누어 줬다. 앞도 뒤도 없이 지금의 자신을 베풀고 나누는 것. 어리던 나는 두려움이 많아 관계에서 솔직하지 못했다. 지금은 시간의 성장 덕분인지, 여전히 말로 표현은 잘 못하지만 내 방식대로 표현하고 있다. 미미해서 잘 전달되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나의 마음은 지금 전하지 않으면 지나가 버린다. 오늘은 그이에게 연락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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