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없던 어느 날이었다. 아빠는 느닷없이 노란 열매가 달린 꺾인 나뭇가지를 들고 들어왔다. 그리고 거실 벽걸이 시계에 걸어두었다. 사실 아빠와 나는 데면데면한 부녀 사이이다. 의외로 부녀 사이가 살갑지 않은 경우가 종종 있는데, 나와 아빠 또한 그러했다. 사춘기쯤부터 아빠와 거리를 두었고 특별히 부딪히거나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닌데. 자연스레 서로 말이 없는 부녀 사이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아빠가 탱자를 가지고 왔을 때도 나는 흘깃 보고는 별 반응을 하지 않았다. 그게 무슨 열매 인지도 몰랐고, 내 눈에는 유자 혹은 귤의 한 종류로 밖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어디서 얻어온 거 유난스럽게 거실에 걸어둔 거라고 생각할 따름이었다. 그러나 아빠는 어딘가 신나 보였다. 좋은 것이라도 얻어 온 듯 기분이 좋아 보였는데. 나는 그에 맞는 반응을 해주지 않았던 것이다. 아빠는 머쓱한 태도로 방에 들어갔다.
그 열매가 무엇인지 궁금하지도 않았고, 별 관심도 없었다. 향기가 나지도 않았고 겉보기에 별다를 특징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저 귤 종류의 못 먹는 과실 하나 얻어왔나 보다고 생각할 따름이었다. 그리고 사실 내 맘대로 유자라고 생각한 탓도 있었다. 어디서 유자 가지 얻어왔네, 유자가 대수롭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시장에 간 엄마가 돌아왔다. 장바구니를 한 짐 풀어놓고 정리하던 엄마는 저게 뭐냐고 물었고, 아빠가 걸어둔 것이라고 말했다. 아빠는 방에서 주무시고 계셨다. 그리고 저게 뭐야? 유자야? 하고 물었다. 그런데 엄마는 바로 탱자라고 말해줬다.
탱자라고?
처음 듣는 과일 이름이었다. 아니 어느 고전 소설에선가 들은 적이 있는 듯도 했다. 대수롭지 않게 보았던 내 첫 눈길과 다르게 나는 신기한 눈길로 시계 아래서 탱자 열매를 살펴봤다. 다시 봐도 사실 귤이나 유자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엄마는 어떻게 한눈에 탱자라고 알아봤을까. 그리고 아빠는 서울 한복판에서 탱자를 가지채 어디서 얻어 왔을까. 그러자 문득 탱자 가지 열매를 들고 들어오던 아빠의 모습이 떠올랐다. 신이 난 얼굴이었다. 엄마가 있었으면 탱자라는 것도 알아보고 맞장구치며 좋은 반응을 주었을 텐데. 데면데면한 딸인 나는 그런가 보다 하는 반응만 보였다. 미지근한 반응에 아빠는 풀이 죽었겠지. 우리는 이렇게 서로에게 알게 모르게 기운을 빼고 마는 반응만 주고받는 미지근한 부녀 사이가 되어버린 것이다.
검색을 해보니 탱자는 액운을 막아준다고 한다. 그래서 집안 가장 잘 보이는 곳에 걸어둔 것이었나. 이미 지나간 시간을 되돌리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다가올 시간에서 변화하고 노력하는 것은 최소한 해볼 수는 있는 일이다. 시계에 걸린 탱자가 다가올 시간의 액운을 막아줄 것이다. 내가 할 일은 노력하는 것, 변화해보는 것이겠지.
'매일이 지금' 카테고리의 다른 글
[파파야] 마당에서 주워온 파파야 (0) | 2020.10.01 |
---|---|
[산호] 내 발등의 산호 (0) | 2020.09.29 |
[가로수] 매일 같지 않은 길 (0) | 2020.09.16 |
[쑥] 절망도 잊게 하는 쑥버무리 (0) | 2020.09.15 |
[벚꽃2] 봄밤 가득 꽃하늘 (0) | 2020.09.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