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오른쪽 발등과 발목 사이에는 작은 흉터가 있다. 작은 흉터라 나만 알아볼 수 있고, 그 흉터를 볼 때마다 나는 태국의 작은 섬 꼬따오를 떠올린다. 나를 아는 사람이라면 내가 참 어지간히 우려먹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만큼 나의 삶에서 꼬따오는 낯설고 행복했던 기억이다. 몇 년 전 나는 꼬따오에서 한달살이를 했다. 그때 스쿠버다이빙 자격증도 땄다. 내 발등의 흉터는 그때 생긴 것이다.
때로는 몸의 흉터가 더없는 기억으로 남을 때가 있다. 예를 들면, 내 왼쪽 팔목에는 잇자국이 있다. 이 흉터는 사실 나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러나 엄마가 사진까지 보여주며, 얘가 물어 버린 거야, 하고 알려줬다. 우리 집에 놀러 온 이웃집 아이가 잘 놀다가 내 팔을 물어버린 것이다. 피가 났고 나는 울고 한바탕 난리가 났을, 아이 키우는 집에 한두 번은 있을 법한 소동이었다. 그때의 흉은 내 팔목에 크게 남았다. 아직까지도 남을 정도면 그때 얼마나 세게 물었던 것일까.
또 내 동생의 얼굴에 흉이 있다. 갓난 동생을 보다가 샘이 나서 내가 그만 그 작은 볼을 훽 꼬집어 할퀴어 버린 것이다. 너무 갓난아기 때 벌어진 일이라 그런지. 그 흉터는 동생이 자라나며 점점 볼 한가운데서 귓가로 밀려 났다. 얼굴 정면에서 보이지 않는다는 게 나로서는 참 다행인 일이다. 잘 보이는 흉터였다면 성인이 되어 흉터 제거라도 해줘야 했을지도 모른다.
위에 언급한 흉터들은 대부분 어린 시절 얻은 흉터이다. 내 팔목의 흉터 말고도 어릴 적 놀이터를 뛰어놀며 다친 자잘한 흉터들이 곳곳에 있다. 특히 성할 날이 없던 내 무릎. 그러나 발등의 상처는 성인이 되어 생긴 흉터이고 당시에는 이렇게 흉이 남을 줄 몰랐던 상처이기도 했다.
스쿠버다이빙을 배우며 처음에는 너무 많이 겁을 먹어서 힘들고 어려웠다. 그러나 섬을 나갈 때쯤에는 이제 막 재미를 알아가던 참이었다. 그리고 이 흉터는 아마 마지막으로 펀다이빙을 하던 때, 실수로 산호에 긁힌 흉터였다. 작은 상처였고 방수 밴드로 금방 조치했기에 이런 흉터가 생길 줄은 몰랐다. 그런데 펀다이빙을 이끌던 강사가 산호에 긁힌 상처는 오래간다는 말을 했다. 나는 주로 이런 말들을 귓등으로 듣는 편이다. 왜냐하면, 당시 내 발등의 상처는 그리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밴드 한 번 붙여 지혈하면 끝날 그런 정도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처는 강사의 말처럼 오래갔다. 피는 금세 멎었지만 딱지가 졌고, 옅은 흉터가 남았다.
서울로 돌아와 다시 서울살이, 빌딩 살이, 직장살이를 시작하며 살게 되고 그렇게 따오의 시간은 멀어져 갔다. 그런데 가끔, 발톱을 깎다가 또는 쪼그려 앉았다가 문득문득 발등을 보게 되고. 상처가 눈에 들어오게 된다. 그러면 다시 그때 그 바다가 떠오른다. 산호에 긁혀 피가 나던 내 발등, 일렁이는 배, 무거운 다이빙 장비. 물속으로 들어오는 햇살, 내 숨소리만 가득한 귓가, 발을 젓지 않아도 되는 유영. 산호가 내게 남긴 징표라고 믿고 싶다. 서울내기가 서울살이만 살다 죽으면 어쩌겠어. 여기 따오의 시간이 있어. 너에게 힘이 되면 좋겠어. 시간과 기억은 멀어지기 마련이다. 발등에 남긴 흉터는 따오가 새겨놓은 징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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