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쑥떡을 좋아한다. 특히 절편, 쑥절편이나 쑥버무리, 쑥개떡 등 다른 속재료 없이 오로지 쑥향과 맛이 잘 나는 떡을 좋아한다. 쑥떡이라면 하루 종일 아니 매 끼니마다 나와도 잘 먹을 자신이 있을 정도이다. (진짜 그렇게 먹으면 물릴지도 모르겠지만) 그렇게 된 데에는 어린 시절부터 꾸준히 먹어온 쑥 조기교육 덕분이다. 어릴 적부터 봄이면 우리 집에는 쑥향이 가득했다.
바깥보다 이르게 집안 곳곳 개나리 꽃이 피는 초봄이 지나고, 할머니의 노란 개나리가 치워지기 시작하면 이제 엄마의 쑥이 시작될 시간이었다. 엄마는 성당 활동에 꽤 열심이었다. 그리고 성당에서는 봄이면 근처 성지로 성지순례 실은 나들이를 떠났다. 그때마다 엄마는 집에서 제일 큰 배낭을 메고 갔다. 텅 빈 배낭을. 그리고 꼬박 반나절 하루를 보낸 성당 봄나들이를 마치고 돌아오면 엄마의 배낭은 빵빵하게 가득 차 있었다. 쑥으로.
지금은 산이나 임야에서 채집이 금지되어 있지만 그 시절에는 그런 게 없었다. 엄마는 아파트 화단에서 쑥이 부지기수로 났지만 여기는 공기가 나빠 좋지 않다며 캐지 않았다. 당시 시영 아파트 아주머니들 대부분이 그러했다. 그러니 엄마에게 성당에서 가는 봄나들이는 아주 좋은 기회였다. 게다가 우리 성당은 늘 성당 수도회에 소속된 태안으로 자주 갔고. 공기 좋고 바다 바람 쐐서 좋은 쑥이라며 엄마는 늘 열심히 뜯어왔다. 엄마뿐 아니라 성당 아주머니들 대부분 그렇게 쑥을 뜯어왔다.
한 번은 나도 그 봄나들이에 따라간 적이 있었다. 엄마 옆에서 쑥을 보고, 엄마 이거 쑥이야 안 캐? 하고 물었는데. 그건 쑥이 아니라고 했다. 그리고 그 옆에 쑥을 가리키며 이게 쑥이라고 알려줬다. 쑥과 비슷한 그러나 먹을 수 없는 풀이 있는데. 앞면은 쑥과 똑같이 생겼지만 뒤집어 보면 뒷면이 다르다고 했다. 쑥과 쑥을 닮은 풀을 배웠으니 나는 더 열심히 쑥을 캐 보겠다며, 사방으로 다녔다. 쑥을 잔뜩 캐서 가득 찬 봉지를 엄마에게 자랑스럽게 내밀었다. 나도 이 정도는 할 수 있지, 우쭐한 마음이었다. 왜 인지 나는 늘 엄마가 시골에서 살던 얘기를 동경했고 서울에서만 자라는 내가 못마땅했다. 그래서 그날은 쑥도 구분할 줄 모르는 도시내기에서 쑥을 잔뜩 캔 시골내기가 된 듯 뿌듯했다.
그러나 엄마는 내가 캔 쑥 봉지를 휙 뒤집어 다 털었다. 다 쑥이 아니야. 아... 그때 나는 엄청 절망했다. 나는 어쩔 수 없는 도시내기이구나. 엄마가 다 털어낸 쑥을 다시 하나씩 챙겨보며, 이건 쑥이지? 이것도 아니야? 계속 물었다. 전부 아니었다. 내 눈에는 전부 쑥이었는데. 기쁨도 절망도 마음에 오래 담아두지 않던 어린 나이였다. 그래서 그 절망은 며칠 후 엄마가 동네 시장 떡집에서 맛있게 버무려온 한가득한 쑥버무리와 함께 잊혀졌다.
글을 쓰다 보니 또 쑥버무리가 생각났다. 맛있다는 시장, 떡집을 다녀도 엄마가 떡집에서 해오는 그 맛은 나지 않았다. 이제는 쑥도 캐지 않고, 쌀도 빻지 않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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