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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이 지금

[파파야] 마당에서 주워온 파파야

by 혜.리영 2020. 10. 1.

 

    몇 년 전 태국의 작은 섬 꼬따오에서 한달살이를 한 적이 있었다. 한달살이라는 낭만보다는, 서울에서의 일상을 그곳에서도 살 수 있을까 싶은 시간이었다. 회사 지원으로 간 것이기에 따오에서도 서울의 일상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었다. 시차로 인해, 9시 30분 출근이 아닌 7시 30분 출근이 되었지만 또 그만큼 그곳 시간으로 4시 30분이면 퇴근하는 일상이었다. 시차가 많이 나지 않기에 인터넷만 연결되어 있다면 어디서든 업무를 유지할 수 있는, 디지털 노마드의 한 달을 보낸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곳에서의 한 달은 모든 면에서 서울과 달랐다. 나는 본적까지도 서울인 모태 서울내기이다. 아파트와 아스팔트는 당연한 것이었고. 시골이라 불릴 지방의 친척도 없었다. 따오에는 대중교통이 없다. 대부분 스쿠터를 타고 다니는데, 생활 반경을 아주 넓히지 않는다면 웬만한 거리는 걸어 다닐만하다. 당연한 얘기지만, 높은 빌딩이 없다. 싸이리 번화가에 높은 호텔이 있었던 것 같지만, 그리 높지 않고 혼자 우뚝 서 있어서 낯선 느낌뿐이다. 

 

    4시 30분, 퇴근을 하면 바로 노트북을 끄고 주섬주섬 싸롱을 챙겨 들고나간다. 해가 질 무렵, 싸이리 비치로 내려가 모래사장 아무 데나 펄럭 싸롱을 깔고 앉는다. 그리고 그냥 바다를 본다. 해가 지는 걸 본다. 눈을 깜빡할 때마다 변하는 하늘과 구름을 본다. 뒤로 팔을 받쳐 푹 퍼진 자세로 바다를 보고 있으면 싸이리 바다를 제 집 마냥 어슬렁 다니는 개 한 마리가 와서 옆에 앉는다. 멀리도 아니고 가까이도 아니고, 딱 발치에 자기 몸 살짝 대고 앉는다. 그리고 우리는 같이 바다를 본다. 해가 거진 다 지고 나면 개는 어슬렁 온 그대로 어슬렁 어딘가로 간다.

    따오에 있으면서는 망고를 자주 사 먹었다. 훨씬 전에 방콕 여행 갔을 때는 다른 과일은 그리 내 입에 맞지 않아 파인애플만 줄창 먹었는데. 이번에는 망고가 입에 맞아 망고만 먹었다. 망고밥도 너무 맛있었다. 서울 와서 망고 가격에 깜짝 놀랐지만. 

    어느 날인가, 그날도 평일 한낮이었고 나는 지내는 숙소 테라스에 놓인 식탁에 노트북을 두고 일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야외 테라스 업무 환경이었던 것이다. 근처를 지나던 현지 아저씨가 지나가다 말고 나를 불렀다. 나도 그도 서로의 말을 할 줄 모르는데, 그는 나에게 파파야를 한 아름 건네주었다. 말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손짓으로 이해해 보건대. 저기 파파야 나무에서 따온 것이라는 뜻 같다. 어떻게 먹는지도 모르고, 무슨 맛인지도 모를 파파야였다. 열대과일이라는 것만 알뿐. 서울에서는 열대 과일, 이국의 낯선 과일이었을 이것이 여기서는 그냥 마당이나 노지에 심긴 과실나무와 같을 뿐인 것이었다. 

    결과적으로는 수분이 많은 파파야는 그다지 내 입에 맞지는 않았지만. 열대과일을 집 앞 감나무 감 따먹듯 먹던 그 기억은 참 새로웠다. 서울에서 귀한 것이 여기서는 흔했고 또 서울에서 당연한 것이 여기서는 없어도 괜찮은 것이었다. 

    전철이 없어도 살기 괜찮구나, 아스팔트가 없어도, 아파트가 없어도 괜찮구나. 서울내기인 나로서는 하루하루가 새롭고 낯선 그래서 더욱 사무치던 꼬따오에서의 한달살이였다. 금방 다시 갈 거라고 눈물로 한달살이를 마감했는데. 서울살이에 어영부영 벌써 몇 년이 지나버렸다. 그리고 나는 꼬따오, 한 달의 시간을 잊지 않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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