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오면 내게는 곤혹스러운 때가 있다. 바로 후식으로 과일을 먹을 때이다. 여름 과일 하면 모두 머릿속에 한 가지 과일을 떠올릴 것이다. 수박. 달고 시원한 수박은 대표적인 여름 과일이고 여름이면 당연하게 수박 한 덩이씩은 먹어야 제대로 여름을 난 듯 생각한다. 그래서 여름이 되면 어디를 가도 빠지지 않는 것이 수박이다. 그러나 나는 수박을 좋아하지 않는다.
회사에서 여름이라고 수박 한 조각씩 먹고 일하자 얘기가 나오면 나는 슬그머니 입을 닫는다. 좋아하지도 않는 과일을 회사라고 좋은 척 ‘와~’ 흥을 내기도 민망하고 그렇다고 ‘전 안 먹어요’ 칼 꺼내듯 자르기도 무안해서. 슬그머니 화장실을 가거나 일찌감치 가서 작은 조각 하나 먹고는 아유 배부르다, 허풍을 떨며 자리로 돌아온다. 수박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면 대부분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을 장착하고는 ‘왜에?’ 하고 물어보기 때문이다.
가족 입맛이 다 싫어하는 건 아니다. 우리 가족은 수박 킬러이다. 여름이면 늘 수박이 반 통씩 냉장고에 있다. 엄마가 시장에서 수박을 한 통 사 오면, 사 온 날 반 통을 잘라먹고 냉장고에 들어간 반 통도 하루 이틀 지나지 않아 바로 사라진다. 나만 수박을 좋아하지 않는 것이다.
내 표현을 잘 봤다면, 나는 수박을 싫어하는 건 아니다. 싫어하는 과일이라면 고약한 냄새가 나는 두리안 같은 것이겠지. 굳이 맛도 없고 귀찮은 과일을 먹지 않는다는 정도인 것이다. 어릴 때부터 수박을 먹으면, 모두가 잘 알 듯 수박은 삼각형 모양으로 잘라 접시에 내놓는다. 그러면 양손 혹은 크기에 따라 한 손으로 들고 아삭아삭 수박을 베어 먹는데. 그때마다 수박 물이 줄줄 흘러 꼭 팔뚝을 타고 팔꿈치까지 흐른다. 하나를 다 먹기도 전에 줄줄 흐르는 수박 물에 나는 휴지부터 찾기 일쑤였다. 또한 나는 수박이 달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여름 과일 중에 단 것이라면 참외가 더 달고 맛있겠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수박을 잘 먹지 않게 되었고, 자주 접하지 않으니 그 맛이나 멋을 모르는 것이다.
여름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과일이 수박이라는 것은 모두가 인정하는 것이지만, 모두가 수박을 좋아할 순 없다. 별 뜻 없이 난 수박 안 좋아해, 안 먹을래 라고 말했다가 몇 번을 왜? 또는 오이나 참외도 싫어해? 또는 여름에 수박 안 먹으면 뭐 먹어?라는 종류의 질문을 받다 보니. 이제는 적당히 나의 수박 무취향을 숨긴다. 사람들은 같은 것을 좋아할 때 친밀감을 느끼고 안정된 마음을 갖는다. 그러나 자신과 다른 점을 만나면 왜 나와 같지 않은가에 대한 맹렬한 질문을 쏟아놓는다. 질문에 악의나 경계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자신과 다른 점에 대해 그렇게 질문을 쏟아놓을 필요는 없지 않을까. 그리고 마지막은 늘, ‘신기하다’, ‘그런 취향 처음 봤어’ 등과 같은 말로 끝난다. 나도 같은 말을 받아치고 싶지만. 여름에 수박을 좋아하지 않는 게 낯설고 이상한 세상이니까. 대신 내가 여름이면 기다리고 꼭 먹는 것은, 참외이다. 여름에 참외를 좋아하지 않는 게 낯설고 이상한 세상이 오면 좋겠다. 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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