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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이 지금

소주 한 잔(006)

by 혜.리영 2021. 3. 27.


스물이 넘어 마음대로 술을 마셔도 되었을 때, 나는 맘껏 술을 마셨다. 다행히(?) 술이 잘 받았고 비교적 얌전한 평소와 달리 붕 뜬 듯 마음껏 표현할 수 있음을 즐겼다. 그때는 필름이 끊기기도 했는데. 또 다행히 주사가 얌전한 편이었다. 소리지르며 뛰쳐나가지도 않고, 시비 걸지도 않고, 토하지도 않고. 그저 울었단다. 나는 기억나지 않으니 알 수 없지만, 필름이 끊긴 다음날 두 눈이 퉁퉁 부어 있는 것을 보면 그랬음직 하다.

나는 맨정신으로는 못한 울음을 다 우는 듯 술만 취하면 그렇게 울었다. 실컷 마신 술을 눈물로 다 쏟아내는지...... 그렇게 성에 차게 울고 나면 그대로 잠들었다. 그러나 이것도 한때였다. 술을 막 마시기 시작하던 그 무렵에만 그렇게 울어대고. 그 후로는 울지 않았다. 그 후로는 필름 끊기도록 마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들이 붓듯 술을 마셔대던 고삐 풀린 스무살이 지나자 술을 자주 마시지 않았다. 또 그렇게 마셔댄 덕분에 어느 정도 취기가 오르는 순간을 알게 되어. 적당한 취기, 필름이 간당간당한 그 쯤에서 술잔을 꺽을 줄 알게 되었다. 적당히 기분 좋은 때까지만 취했다.

가끔 술 생각이 나는 날이 있다. 달디단 소주가 생각나는 날. 얼음을 넣지 않아도 차고, 설탕을 넣지 않아도 달달한. 소주가 생각나는 날. 크~ 한 마디 뱉으며 가슴 속 꾹 막힌 먼지를 툭 털어놓고 싶은 날. 그렇게 마음이 맥힌 날이면 소주가 생각난다. 마음이 맥혀 무엇으로도 풀어낼 수 없을 때, 나도 내 마음을 알아차리지 못했을 때. 똑똑 마음이 먼저 다가와 소주 생각으로 노크를 한다. 너 마음 좀 털어내야겠어, 이렇게 맥혀 있으면 큰일나. 마음이 막힌 날이면 달디단 소주 한 잔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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